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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영적인 배고픔과 존재성

오늘날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예수님 당시 갈릴래아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써야 했는지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사실 로마의 식민지 국민으로 고생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보다 힘든 것은 부패한 유다 귀족의 엄청난 착취였다.

당시 갈릴래아 사람 대다수는 소작농이었고, 대부분이 지주들에게 빚을 지고 있었다. 수확이 좋지 않으면 돈을 빌릴 수밖에 없었고, 그 빚을 갚으려면 풍년이 들어야 하지만 그것이 어찌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인가. 그러다 보니 자연히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결국엔 온 가족이 종이 되거나 길바닥에 나앉는 수밖에 없었다.

끼니조차 해결되지 않는 갈릴래아 소작농들의 처지에서 예수님의 출현은 글자 그대로 배고픔과 가난에서의 해방이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게 되면 더 이상 끼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리라는 생각에 그토록 열심히 예수님을 찾아다녔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무색하게 느낄 정도로 그들이 당신을 찾아온 동기가 이기적이고 속물적이라는 점을 들어 질책하셨다. 기적은 때로 신앙을 심화시키기보다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빵의 기적을 목격한 그들이 또 다시 표징을 요구하지 않았던가.(요한 6,26.30 참조)



빵을 많게 한 놀라운 기적을 목격하고, 예수님을 가리켜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요한 6,14) 하고 외쳤던 바로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의심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썩어 없어질 양식을 찾으려 애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을 찾으라고 권하셨다.

배고픔에는 육체적인 배고픔 곧 현세적인 배고픔과 영적인 배고픔 곧 근본적인 배고픔이 있다. 두 가지 배고픔이 모두 채워져야 우리는 행복을 느낄 수 있지만 어떤 배고픔이 먼저 채워져야 할까.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4)는 말씀처럼 영적인 배고픔이 먼저 채워져야 한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느끼는 삶의 방식에 어긋난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느님의 이끄심이 필요하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요한 6,44)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끌어주시고자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51)

park.pio@gmail.com



박비오 신부 / 천주교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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