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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의 시민권 미국 역사-3] '건국신화' 만들어 간 영웅들의 시대

이종호 / 논설실장
이종호 / 논설실장

[LA중앙일보] 발행 2018/07/30 미주판 12면 기사입력 2018/07/29 16:03

<3> 독립전쟁

미국 독립에 혁혁한 공을 세운 영웅들을 기리는 기념우표. 왼쪽부터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벤저민 프랭클린, 페트릭 헨리, 토머스 페인, 오른쪽 두 사람은 프랑스인 라파예트 후작과 독일인 본 스터벤 장군.

미국 독립에 혁혁한 공을 세운 영웅들을 기리는 기념우표. 왼쪽부터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벤저민 프랭클린, 페트릭 헨리, 토머스 페인, 오른쪽 두 사람은 프랑스인 라파예트 후작과 독일인 본 스터벤 장군.

1773년 일어난 보스턴 차 사건을 형상화한 기념 우표. 미국 독립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아래 사진은 배신자 베네딕트 아놀드 장화 동상.

1773년 일어난 보스턴 차 사건을 형상화한 기념 우표. 미국 독립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아래 사진은 배신자 베네딕트 아놀드 장화 동상.

#. 미국의 가장 큰 국가 기념일은 7월 4일 독립기념일(Independence Day)이다. 1776년 식민지 13개주가 대영제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날이다. 하지만 이 날은 독립을 이룬 날이 아니라 영국의 식민지배에 처음으로 공식 반기를 든 날이다. 당시 세계 최강국이던 영국과 힘든 전쟁을 치르며 수많은 고비를 넘어야 했다. 1783년 파리조약에서 국제적으로 독립 승인을 받고, 1787년 헌법을 제정해 미국이라는 국가를 정식 출범시키기까지는 10여년이 더 필요했다.




세계 최강 영국에 맞서다

그렇다면 멀쩡히(?) 잘 있던 북미 식민지 13개주는 왜 전쟁까지 불사하며 독립을 쟁취하려 했을까. 교과서의 모범 답안은 '자유'를 갈망해서다.

시민권 시험 문제풀이집이 일러주는 답은 좀 더 구체적이다. 높은 세금 때문에, 대표 없는 과세 때문에, 식민지 주둔 영국군의 횡포 때문에 등. '그럭저럭 하지만 충분히' 먹고 살만했던 식민지가 '돌변한' 영국의 태도에 위협을 느꼈다는 말이다.

당시 북미 13개주는 영국의 식민지라고는 해도 우리 관념 속에 있는 일제 식민지같은 곳은 아니었다. 식민지인들은 나름 많은 자치와 자유를 누렸고 오히려 영국이라는 보호막 아래 많은 '공짜 이익'도 누렸다. 하지만 영국은 북미에서, 또 유럽에서 계속 전쟁을 치렀고 재정압박에 내몰렸다.

탈출구는 북미대륙 신흥 식민지였다. 영국 의회는 식민지에 각종 세금을 부과하는 법을 잇따라 만들며 식민지인들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설탕법, 군대숙영법, 인지법, 타운센드법 등이다.

당연히 반발이 일었다. '대표 없이 과세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는 구호를 외치며 조세 관련 법 철폐 운동이 벌어졌다. 영국 상품 불매운동도 일어났다. 영국도 그냥 있지 않았다. 충돌은 당연했고 공공연히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도 터져 나왔다.

저항의 근원지는 보스턴이었다. 1770년 보스턴 주둔 영국군과 주민들간의 사소한 충돌로 식민지 주민 5명이 사망했다. 식민지 사람들은 이를 '대학살'이라는 크게 과장된 이름을 붙였다. 반영감정은 더욱 부풀어 올랐다. 희생자 장례식엔 당시 보스턴 주민 1만 6천 명 중 1만 명이 참가했다.

3년 후 1773년엔 보스턴 차(茶) 사건이 터졌다. 식민지 사람들이 차에 부과되는 세금에 반대하며 보스턴항에 정박 중이던 동인도 회사 선박에 잠입, 선적돼 있던 수백 박스의 차를 바다 속으로 던져버린 사건이다. 영국의 인내는 거기까지였다. 보스턴항을 폐쇄했고 찻값 보상을 요구했으며 자치권도 철회했다. 4천명의 병력과 함께 새 영국 총독이 부임했다. 이들의 식량과 숙영지 비용도 식민지가 부담해야 했다.

식민지인들을 분노했다. 매사추세츠뿐 아니라 다른 식민지들까지 가세했다. 1774년 9월 필라델피아에서 제1차 대륙회의가 열렸다. 조지아를 제외한 12개 식민지 대표 56명이 참가했다. 영국의 강압적 법령에 반대하는 결의안이 채택됐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제2차 회의를 소집한다는데도 합의했다.

이제 독립은 시대적 소명이 됐다. 이른바 '애국자'들은 연설로 혹은 책으로 대중을 각성시켰다. 페트릭 헨리(1735~1799)는 1775년 버지니아 의회 연설에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절규했다. 이 말은 이제 미국인이라면 유치원생도 아는 명언이 됐다.

토머스 페인(1737~1809)은 1776년 처음 발간된 '상식(The Commonsense)'이란 책에서 꿈과 자유의 신대륙이 폭군이 지배하는 작은 섬나라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라 주장했다. 책은 50만부 이상 팔렸다. 당시 식민지 인구는 노예를 포함해 300만명 정도였다. 성인 백인 남자들은 거의 모두 이 책을 읽었다는 얘기다.

1776년 7월 4일 채택된 독립선언서는 그 절정이었다. 토머스 제퍼슨이 초안한 독립선언서는 식민지인의 마음을 하나로 묶었다. 인간의 천부 인권과 자유, 행복 추구권을 담아냄으로써 세계사적인 문건이 되었다.

미국 독립의 영향과 의미

#. 독립을 향한 첫 총성은 이미 울렸다. 1775년 매사추세츠주 렉싱턴에서였다. 식민지군 8명이 영국군의 총격에 목숨을 잃었다. 식민지 대표들은 다시 필라델피아에 모여 2차 대륙회의를 열었다. 영국과의 전쟁을 공식 결의하고 식민지 연합군인 대륙군(Continental Army)을 창설했다. 총사령관은 조지 워싱턴이었다.

전쟁은 1775년부터 8년간 이어졌다. 전투는 지지부진했고 대륙군은 고전했다. 조지 워싱턴은 지구전으로 버텼다. 시간은 식민지 편이었다. 몇 차례 의미 있는 승리를 거두었고 프랑스, 스페인도 식민지 편에 섰다. 마침내 대륙군은 1781년 버지니아 요크타운 전투에서 영국 주력부대의 항복을 받았다. 영국은 의회도 국왕도 더 이상의 전쟁은 무모하다고 생각했다.

1783년 파리에서 강화조약이 체결됐다. 유럽 각국이 식민지 미국의 독립을 승인했다. 영국은 기존 13개주 외에 미시시피강까지 이르는 넓은 땅까지 내어 놓았다. 참전한 스페인은 플로리다를 포함해 북미 남서부를 넘어 캘리포니아 연안까지 이르는 광대한 땅을 챙겼다.

8년의 독립전쟁 기간 동안 2만 5000명의 식민지군이 죽었다. 영국군도 2만여 명이 전사했다. 독립전쟁은 북미 대륙에서 벌어졌지만 여러 유럽 국가들이 참전한 국제전이었다. 프랑스 군인들은 귀국해 왕도 없고 신분도 계급도 없는 새 나라 미국 이야기를 전했다. 그들이 전한 자유와 평등에의 꿈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독립전쟁을 읽으며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어떻게 세계 최강 영국으로부터 미국이 독립할 수 있었을까? 역사가들은 대답한다. 영국의 어설픈 식민지 경영과 식민지인들의 경제적 욕망, 당시 유럽을 휩쓸었던 계몽주의 철학과 사상,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합쳐진 역사적 필연이었다고. 이는 시민권 시험이 요구하는 '자유'라는 답변과는 제법 거리가 있다.

그렇지만 미국의 독립 전쟁 승리는 단순히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이상의 '위대한 사건'이었다. 지금껏 인류 역사에서 보지 못한 새로운 정치 체제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독립전쟁보다는 '미국혁명'이라는 말을 더 선호한다. 신생 미국이 어떻게 '혁명'을 완성해 가는지는 다음 회에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영웅과 배신자

#. 전쟁은 영웅을 낳는다. 미국 독립 전쟁의 최고 영웅은 조지 워싱턴(1732~1789)이다. 버지니아의 농장주였던 그는 대륙군 총사령관이 되어 별다른 전투경험이 없는 오합지졸들로 영국군에 맞섰다. 그럼에도 탁월한 지도력으로 7년을 버티다 마침내 난공불락의 요크타운을 점령함으로써 전쟁의 상황을 완전히 뒤집었다. 그는 미국 독립 후 첫 대통령이 되었고 건국의 아버지로 모든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은 가장 미국인다운 미국인으로 추앙받는 사람이다. 다재다능한 천재였던 그는 정치인, 외교관, 작가 등으로 이름을 날렸다. 피뢰침을 발명한 과학자이기도 했으며 펜실베이니아 대학을 세운 교육가이기도 했다. 미국 최초로 무료 도서관을 세웠고 소방서도 만들었다. 독립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프랑스로 건너가 루이 16세를 설득, 지원을 받아냄으로써 미국 독립운동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토머스 제퍼슨(1743~1826)도 독립선언서 기초로 영원한 미국의 영웅이 되었다. 철학과 과학, 문학에 두루 정통했고 7개 국어를 구사했다. 나중에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이 됐지만 자신의 묘비명엔 대통령 경력은 안 쓰고 독립선언서 기초한 것은 남겼을 정도로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독립선언서 서명은 잘못될 경우 목숨까지 걸어야 할 위험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대륙회의 의장이던 존 행콕은 눈이 나쁜 영국 국왕 조지 3세가 안경을 쓰지 않고서도 자신의 이름을 잘 볼 수 있도록 가장 큰 글씨로 서명했다. 미국인들은 이런 애국자들을 제대로 기리고 기억한다. 워싱턴, 제퍼슨, 프랭클린, 존 행콕 등 전국 곳곳의 도로, 공원, 빌딩 등에 독립전쟁 '영웅'들의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은 그래서다.

반면 미국에도 이완용 같은 매국노가 있었다. 뉴욕주 새러토가에 가면 특이한 장화 동상을 볼 수 있다.(왼쪽 아래사진) 독립 전쟁 초기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던 베네딕트 아놀드(1741~1801)의 장화 동상이다. 그는 나중에 변절해 영국군과 내통하고 영국군 장군이 되어 식민지군을 괴롭힌 희대의 배신자가 됐다. 지금 미국인들은 그 장화 동상을 보면서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변절자를 기억한다. 심지어 '에그 베네딕트'라는 요리를 만들어 씹어먹으며 그를 조롱하기도 한다.

시민권 시험 문제 풀이

▶문:식민지 사람들은 왜 영국에 맞서 싸웠는가? (Why did the colonists fight the British? )

답: 높은 세금 때문에 (because of high taxes) / 대표 없는 과세 때문에(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 / 영국 군대가 제멋대로 숙영했기 때문에(because the British army stayed in their houses (boarding, quartering) / 자치 정부가 없었기 때문에 (because they didn't have self-government)

▶문:독립선언서는 누가 썼는가? (Who wrote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답.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문:독립선언서가 채택된 것은 언제인가? (When was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adopted?

답. 1776년 7월 4일 (July 4, 1776)

▶문:벤저민 프랭클린은 무엇으로 유명한가? 하나만 말해보라. (What is one thing Benjamin Franklin is famous for?)

답. 미국 외교관(US diplomat) / 최고령 헌법제정 위원(oldest member of the Constitutional Convention) / 최초의 우정국 장관(first Postmaster General of the United States) / '가난한 리처드의 연감' 저자(writer of "Poor Richard's Almanac) / 최초의 무료도서관 설립 (started the first free libraries)

▶문:미국의 국부(國父)는 누구인가? (Who is the 'Father of Our Country'?)

답.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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