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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혼인 예복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어 사람들을 하느님 나라에 초대하셨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초대에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그들은 예수님이 보낸 이들을 박해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구원의 올리브 나무에서 잘라내셨다.(로마 11,17 참조)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잔치에 불러들이셨다. 여기에서 '고을 어귀'는 성읍이나 마을의 경계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이어지는 곳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사람들을 초대했다는 것은 이스라엘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곳, 곧 이방인들을 초대했다는 뜻이다. 이때 초대받기 위한 자격은 아무것도 없었다. 예수님은 '아무나 만나는 대로' 구원의 잔치에 초대하셨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잔치에 초대받은 이는 '혼인 예복'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혼인 하객들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예의, 혼인 예복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이집트를 탈출한 히브리인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까지 약 200년 정도 소요되었다. 그동안 히브리인들에겐 왕이 없었다. 히브리인들의 왕은 출애급을 이끈 하느님이셨고, 하느님께서는 히브리인들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판관들을 내세워 국가를 위기에서 구해주셨다. 그런데 재미난 사실은, 위기에 처한 국가를 구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발탁한 사령관들, 곧 판관들의 출신성분이다.

그들의 출신성분은 매우 다양했는데, 판관기 11장에 등장하는 입타는 길르앗이 매매춘 여성에게서 얻은 아들이었다. 입타는 일찍이 길르앗의 본처 아들들에게 내쫓김을 당했었는데, 그렇게 '버림받은 서자(庶子)'가 하느님의 도구가 되어 위기에 처한 국가를 구하고 하느님의 이름을 빛냈다.

그런데 판관기 11장을 음미해 보면 애잔한 슬픔이 밀려온다. 왜 승리의 대가로 사랑하는 사람을 번제물로 바칠 수밖에 없었을까? 물론 그 당시 풍습이었겠지만, 그것 또한 하느님께서 원하신 것도 아니었지만, 그만큼 절박했다는 뜻이겠지. 사랑하는 사람을 바쳐서라도 위기에 처한 국가를 구하겠다는 일념! 훗날, 인류를 구하기 위하여 당신의 외아들을 희생시킨 하느님의 마음을 연상케 한다. 입타는 하느님께 드린 약속을 물리지 않았다. 비록 그 대상이 자신의 외동딸이었지만, 가슴이 찢어지고 절망의 나락에 떨어지는 것 같았겠지만, 하느님께 드린 약속을 저버리지 않았다.



임금님의 혼인 잔치에 참석한 하객들에게 요구하는 최소한의 예의, 혼인 예복, 그것은 이와 같은 사랑이 아닐까. 자기사랑보다 앞서는 하느님 사랑! 혼인 잔치에 머물러 있으면서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교회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없는 사람이다.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마태 22,11-12)

park.pio@gmail.com


박비오 신부 / 천주교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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