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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보호무역, 대공황 '흑역사' 반복하나

미국, 1930년대 농민 표심 얻으려
평균 관세율 5배로 높이는 법 강행
교역 단절로 재고 쌓여 도산 속출

자국 산업 지키려다 세계 경제 파탄
'반칙왕' 트럼프가 되새겨야 할 교훈


태평양을 사이에 둔 미국과 중국이 서로 강펀치를 주고받으면서 글로벌 무역 전쟁이 본격적으로 점화됐다.

미국이 지난 15일 500억 달러 상당의 중국산 수입품 1162개 품목에 25%의 추가 관세를 물리겠다고 발표한 것은 시작이었다.

중국도 질세라 다음날인 16일 국무원 관세세칙위원회가 나서 500억 달러어치의 미국산 제품에 똑같이 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동등 규모·강도의 즉각 맞보복이다. 무역 전쟁은 진정되기는커녕 더욱 거세졌다.



18일 트럼프 대통령이 2000억 달러의 중국산 수입품에 10%의 추가 관세를 매기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미 무역대표부(USTR)에 지시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난 19일 항의 성명만 발표한 채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미국의 대중 수입은 5050억 달러(21%) 정도지만 대중 수출은 1300억 달러(8%)여서 더는 동등 수준의 맞보복을 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동안 부품·원자재 주요 공급국으로서 중국 수입의 10%를 차지해온 한국 경제에도 만만치 않은 파도가 몰려올 태세다.

지난 20일엔 유럽연합(EU)이 22일부터 미국산 수입품에 28억 유로의 보복관세를 물린다고 밝히면서 대서양을 사이에 둔 미·EU 무역 전쟁도 불이 붙고 있다. 미국이 지난 3월 8일 EU산 철강에 25%, 알루미늄 제품에 10%의 관세를 각각 부과하기로 한 데 대한 맞대응이다. EU의 보복관세 부과 대상에는 철강은 물론 버번위스키·청바지·모터사이클·땅콩버터·오렌지 주스·크랜베리 등 미국 대표 수출품이 망라됐다.

미·중에 이어 미·유럽까지 무역 전쟁에 한바탕 휘말리면서 전 세계 무역규범이 통째로 뒤흔들릴 태세다.

이를 보면 미국발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다 대공황을 맞았던 1930년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미국 경제사학자 존 스틸 고든은 저서인 '월스트리트 제국'에서 "대공황은 29년 10월 29일 주가 대폭락이 아니라 이듬해 30년 6월 17일 보호무역법인 스무트·홀리법 제정이 불러왔다"라고 주장했다. 29년의 '블랙 프라이데이'는 전조였을 뿐 대공황을 이끈 핵심은 보호무역주의라고 설명한다.

그해 연방 의회를 통과하고 허버트 후버(1874~1964년, 재임 29~33년) 대통령이 서명한 이 법으로 평균 관세율이 13%에서 59%로 뛰었다.

제정 목적은 농산물 수입 관세를 높여 미국산을 보호하고 가격을 유지해 중서부 농민 유권자 표심을 얻는 것이었다. 제조업계도 수입 관세를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이 법은 경제 논리가 아니라 정치 논리의 소산이었다.

당시 미 경제학자와 경제계 인사 1000명 이상이 세계 경제가 동반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반대 성명에 서명하고, 30여개 국가에서도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과적으로 이 보호무역법은 경제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전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라는 부메랑만 불렀다. 법이 발효되자 독일·프랑스·영국 등 20여 개 유럽 국가가 20~40%의 보복관세를 미국 제품에 물리면서 바야흐로 30년대 무역 전쟁의 막이 올랐고 세계 무역 규모도 현저히 줄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전 세계적으로 경제블록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영국은 31년 웨스트민스터 선언으로 캐나다(1867년 독립)·호주(1901년)·뉴질랜드(1907년)·남아프리카공화국(1910년) 등을 모아 영연방을 창설했으며 특혜 관세를 부여해 블록 무역을 강화하고 파운드 경제권을 형성했다.

미국도 카리브해·중미 국가들과 호혜 통상협정을 맺고 비교적 낮은 관세를 부여함으로써 달러 경제권을 이뤘다.

국제 교역은 이런 블록 안에서 주로 이뤄졌다. 블록과 블록 사이에는 수입제한과 배타적인 관세 부여를 통해 교역 단절 현상이 나타났다.

국제무역의 분단 현상이다. 자국 문제를 타국이나 지역에 전가한다는 의미의 '근린궁핍화정책(Beggar thy neighbour)'이란 말도 생겼다.

결과적으로 보호주의는 이를 요구했던 미 유권자들을 보호하지 못했다. 산업 생산액은 29년을 100으로 봤을 때 32년 54로 반 토막이 났다. 지역마다 가동을 멈춘 공장이 줄을 이었다. 수출은 3분의 1로 줄었다. 제품을 만들어도 내수도 수출도 되지 않아 재고가 쌓여갔다. 실업률은 1933년 무려 25%에 이르러 노동자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거리에 가득 찬 실업자들은 사회적 불안 요인이 됐다. 유권자의 표를 얻으려고 추진했던 보호무역주의가 유권자인 국민을 파탄에 빠뜨린 셈이다.

기업 실적이 악화하고 부실 채권이 늘자 은행 파산 사태와 예금주들의 예금인출 사태가 줄을 이었다. 주가가 폭락하고 금융 불안을 가중하면서 결국 본격적인 대공황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대공황은 글로벌 정치 불안으로 이어졌다.

특히 독일은 19년 베르사유 조약에서 1320억 금마르크라는 엄청난 전쟁 배상금을 물게 되면서 가뜩이나 불만이 많았는데 대공황까지 겹치면서 주민 생활이 더욱 피폐해졌다.

결국 배타적 민족주의를 앞세운 나치당이 33년 선거로 집권했다.

나치는 '아우타르키(Autarkie·자급자족주의)'를 앞세워 보호무역 기반의 폐쇄경제 체제를 추구했다.

당시 각국이 상호 의지하는 자유무역을 강화했더라면 나치·파시스트·군국주의자의 침략을 통한 세력 확장 추구가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역사적 가정도 있다. 오늘날 트럼프가 되새길 교훈이다.

보호무역 정책은 겉으론 달콤해 보이지만 실제론 맹독성 '헤로인'이다. 표를 얻으려고 이런 '정책 마약'을 마셔버린 후버 대통령의 실패는 전 세계 정부에 교훈을 준다.

현명한 정부는 포퓰리즘에 빠져 무역 전쟁을 벌이는 대신 자유무역을 통한 장기적인 통상 확대나 80년대 플라자 합의 같은 다자간 환율 조정 등을 처방전으로 제시해 성공을 거둬왔다. 이런 역사적인 교훈을 무시하는 '반칙왕' 트럼프를 전 세계가 우려하는 이유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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