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삶의 향기] 새로운 출발을 위한 튜닝

음악계의 새해는 언제나 신년 음악회와 함께 시작된다. 세계적으로 가장 큰 관심은 단연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이다. 90여 개 나라에 생중계되고 5000만이 넘는 사람이 시청한다고 하니 가히 그 인기를 짐작할 만하다. 올해도 주 레퍼토리는 어김없이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와 폴카들이다. 새로운 해를 흥겨운 음악과 춤으로 시작하는 셈이다. 지금과 같은 빈 신년음악회는 1939년 나치 정부의 기획이다. 전쟁에 지친 사람들을 달래고 군인들의 사기를 높일 목적으로 새해 첫 날 흥겹고 화려한 왈츠를 전국에 방송했다고 한다. 80년이 흘러 똑같은 음악으로 전 세계에 전쟁 대신 희망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상임 연주자를 두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빈 필하모니가 매년 누구를 신년 음악회의 지휘자로 초빙하는가는 언제나 큰 화젯거리이다. 올해에는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봉을 잡았다. 빈 신년 음악회를 한 번만 지휘해도 커다란 영광일터인데 그는 벌써 5번째다.

오케스트라 연주에서는 지휘자가 주목을 끌기 마련이다. 여러 악기들의 소리를 조화롭게 조율하면서 전체 음악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 바로 지휘자니까. 100명이 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모두 자기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음악가들이며, 그만큼 자기만의 개성과 음악에 대한 확신도 강하다. 그런 이들을 하나로 묶어서 절묘한 하모니를 만들어 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일까. 지휘자가 지휘봉을 휘두를 때마다 소리가 공간을 채우고 화음이 청중의 마음을 적시는 모습은 볼 때마다 늘 경이롭기 짝이 없다.

오케스트라처럼, 다양하고 이질적인 구성원들이 서로 경쟁하면서도 완벽한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일은 어쩌면 모두가 꿈꾸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고 하는 피터 드러커가 오케스트라를 이상적인 조직 모델로 간주한 것이 놀랍지 않다. 단원 모두가 서로 다른 악기를 연주하면서도 오케스트라가 일사불란하게 하나의 화음을 낼 수 있는 것은 연주해야 할 음악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악보는 이를 위한 공통의 규칙을 제공한다. 이 틀 속에서 단원들은 자신의 개성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전체의 조화와 화음에 녹아들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언제나 튜닝이다. 지휘자가 입장하기 전에 모든 단원은 자기 악기의 음높이를 하나로 맞춘다. 오보에 수석 주자가 기준음이 되는 '라'음을 불어주면 모두가 거기에 맞춰 자신의 악기를 조율한다. 오보에가 이 역할을 하는 것은 음색이 맑고 높으며 온도나 습도에 덜 민감해서 정확한 음을 들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보에 음을 듣고 플롯, 클라리넷, 바순 같은 목관악기가 먼저 튜닝을 하고, 이어서 트럼펫, 호른, 트롬본, 튜바 같은 금관악기가 음을 맞춘다. 그러고 나서 다시 오보에가 '라'음을 불어주고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 베이스가 차례로 튜닝을 한다. 그렇게 모든 악기가 튜닝을 마치고 나면 지휘자가 등장해서 비로소 고대하던 연주가 시작되는 것이다.

튜닝이 음악 연주에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도 오케스트라와 다르지 않다. 새로운 출발에서 예외 없이 필요한 것은 튜닝이다. 누구라도 조율되지 못하면 갈등을 일으키고, 갈등 속에서는 아름다운 하모니는 나오지 않으니까. 사회도 마찬가지 아닐까. 공통의 기준이나 공감대가 없는 사회는 늘 반목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무술년,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이다. 기대하는 모든 것들을 이루는 행복한 한 해가 되기를. 모든 곳에서 갈등보다는 화합과 소통의 하모니가 울려 퍼지기를. 그리고 조금씩만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민은기 / 서울대 교수·음악학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