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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자동차 여행의 즐거움

자동차 여행의 즐거움은 간간히 들리는 휴게소의 커피 한잔에 있다고 난 생각한다.

시동생이 커다란 새집을 사서 이사했다고 해서 축하차 남편과 애틀랜타로의 자동차 여행을 단행했다. 젊어서부터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즐겨왔던 우리 부부는 흥분된 마음으로 아침 일찍 떠났다. 일부러 커피는 갖고 떠나지 않았다. 두 시간쯤 달려 도착한 조금 한적한 휴게소에서 던킨 도넛의 달짝지근한 커피 한잔을 들고 난 아주 행복한 기분이 되어 차에 오른다.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매력적인 커피 향에 내 코가 호강을 한다. 저절로 미소가 피어나며 오래 전 우리가 철 모르는 어린 연인이었을 때가 떠오른다.

우리 부부가 자동차 여행에 열광 하는 것은 어쩌면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서울서 가난한 학생 연인일 때부터의 길들여진 습관이다. 매일 만나고 싶은데 딱히 갈 곳도 없고 돈도 넉넉지 않아서 함께 오래 있을 수 있고 돈도 별로 들지 않는 경춘선을 자주 탔다. 얄팍한 우리 주머니로는 딱 맞는 데이트 코스였다. 청량리 역에서 기차를 타고 춘천 역에 내려 역 전 앞 막국수 집에서 막국수 한 그릇씩 먹고 다시 돌아와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단순한 코스의 데이트지만 우린 아주자주 그렇게 데이트를 했다. 갈 때도 두어시간 가량을 같이 앉아서 이야기하고 또 돌아올 때 두어시간 가량을 그렇게 마주보고 이야기하다보면 시간이 화살촉처럼 빨리지나가 어느덧 종착역이었다. 우린 그렇게 종착역에서 종착역까지 알뜰하게 연애를 했다. 그때는 기차에서 삶은 달걀도 팔고 칠성사이다도 팔았다. 배가 고플 때는 기차에서 계란도 사먹고 사이다도 한 병 사서 나누어 먹었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재미있고 즐거워서 눈가엔 항상 행복이 달려있었다.

둘이만 있어서 행복했던 기억이 이렇게 둘이 하는 자동차 여행으로 발전했다. 결혼하고 아이들이 생기고 정신없이 둘이라는 말도 잊은 채 바쁘게 부모의 역할에 충실히 살았다. 늘 부산하고 바쁜 시간도 지나가고 어느새 우리는 이렇게 둘만 남았다. 둘만 남겨지자 어색하고 외롭고 쓸쓸했다. 아이들이 떠난 빈자리가 다시금 남편으로 채워지는 데는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늘 뒷전에 아이들 다음으로 존재하던 남편이 내게 가장 중요하고 소중하게 느껴진 데는 아이들의 역할도 컸다. 잘 자란 큰 자식들은 어렵고 까다로웠다. 온 몸 바쳐 길러냈지만 난 배신의 쓴맛을 보곤했다. 자식들은 남편처럼 말랑말랑 하지도 않고 내가 어거지를 쓴다고 받아 주지도 않지만 남편은 언제나처럼 다 받아주고 다 이해해준다. 이제서 뒤돌아보니 그 곳에 남편이 있었다. 남편에게 아이들의 배신을 뼈아프게 성토 하고 나면 서운한 맘이 누그러지면서 그만 하면 착하고 바르게 컸다고 든든해하는 맘이 생기는 건 남편이라는 버팀목이 있어서 가진 자의 만용을 부려도 본다.



이렇게 난 다시 눈을 뜨고 자식들을 좀 떼어내고 그 자리에 남편을 들여 놓으며 우린 다시 둘이 되었다. 그토록 둘이 있고 싶어서 한 결혼, 임신과 육아로 정신없이 남편은 뒷전 이었지만 30여 년 만에 이렇게 둘만 되었다. 함께하는 자동차 여행은 비록 경춘선 때의 풋풋함과 설렘은 없지만 함께한 지난 시간과 아이들 이야기를 하다보면 화살촉처럼 두어 시간 지나 다음번 휴게소에 도착한다. 막국수 한 그릇 대신 햄버거와 프렌치프라이를 케첩에 찍어 손가락까지 쪽쪽 빨며 맛있게 먹다 눈을 들어 남편을 보니 남편의 눈에도 행복이 걸려있다. 이런 시간이 좋아서 우린 자동차 여행을 열광한다.


박향숙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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