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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할미 닷 컴

'할미 닷 컴(Halmi.com)', 몇 년 전 잘 아는 사람의 e메일 주소를 받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할미'는 분명히 할머니를 말 하는 것일 텐데 왜 e메일 주소에 넣었을까. 그 할머니는 느낌이 좋은 분이다. 웬만한 것은 이해해 주고 물건을 살 때도 시원스러운, 통이 큰 사람이다. 무뚝뚝해 보이지만 깊은 정이 있다.

어느 겨울, 캐리비안에서 골프를 치다가 쓰러진 남편은 몇 년간 투병을 하다가 돌아 가셨다. 그는 의사인 딸의 아이를 돌봐 주는 것이 무척 행복했을 것이다. 손자는 할머니를 '할미'라 불렀다. 너무 사랑스러워 e메일에 '할미'를 넣었다고 한다. 친구들이 'Halmi'가 뭐냐고 난리를 쳤고 버티다가 그는 e메일 주소를 바꿨다.

얼마 전 만났는데 얼굴이 안 좋아 보였고, 돌아간 남편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손자 자랑을 귀가 따갑도록 하고 있다. "손주 자랑하려면 돈 내고 하라"는 농담까지 나오고 있고 손자 이야기에 식상한 사람도 많다고 한다. 얼마 전 마흔이 된 둘째 딸이 귀여운 아들을 낳은 후 생각이 달라졌다. 나는 처음 나이 많아 결혼한 딸이 아기를 가지지 못할까 염려했다. 1년 반 전 딸이 센트럴파크 근처 식당에서 양가 부모 앞에서 임신한 것을 말했을 때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났고 그 후 건강한 아기가 태어나기를 빌었다.



아기는 천사 같았다. 내 거친 손을 비누로 깨끗이 씻고 고사리 같은 손을 만지면서 신기함과 더불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신앙이 약한 나는 성경에 나오는 천사보다 아기 천사를 더 믿는다. 아기에겐 순수밖에 없다. 아무리 울어도 미워할 수 없다. 나도 태어났을 때는 천사였을 것이다. 자라면서 조금씩 꾀가 생기고 나빠졌을 것이다. 어려운 시대를 지나오면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핑계로, 후회할 행위를 했고 악마가 되어 갔을 것이다.

나는 천사와 악마의 중간쯤으로 죽고 싶다. 그러면 천국에도, 지옥에도 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 분들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천국과 지옥은 현세에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한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난다. 플로리다에서 겨울 골프를 즐기고 한국 식당에서 반주를 겹쳐 배불리 먹은 그는 "이 것이 천국이다. 오늘 골프가 잘 됐고 지금 무척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상상을 해 보았다. 남미에서 미국으로 두 번 이민 온 그는 특별히 신앙이 없으나 누군가의 권유로 교회에 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목사님은 강단에서 천국과 지옥에 대해 귀가 따갑도록 설교 했을 것이다. 그는 착한 사람이니까 악한 행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천국이 이 땅에 있을 것이라고 믿는 그를 이해한다.

주변에 손자 보는 것을 큰 낙으로 삼는 친구들이 많다. 혈육보다 가까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이민 초기 자식 크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지내온 우리. 이제 와서 열심히 일하는 자식을 도와주기 위해 손자를 봐 주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사랑이다. 잃었던 모성애와 부성애를 다시 발견하고, 더 늙기 전에 사랑을 듬뿍 주고 싶어질 것이다.

새로 태어난, 천사 같은 아기에게 주근깨 많은 내 얼굴을 갖다 냈다가 놀라 물러섰다. 나이가 많아지면서 깨끗한 피부를 유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 까. 살아가면서 후회할 일을 안 한 사람이 있을까. 미안한 말이지만 늙어 가는 것은 조금씩 악마가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천사 같은 아기를 사랑하는 것은 일종의 속죄가 아닐까. 손자 사랑은 자연적 사랑이다. 이제 태어난 지 2주 째 맞는 손자, 안아주면서, 천사에게 내 말을 전하고 싶다. 나는 천사로 태어나 악마가 되었지만 너는 끝까지 천사로 남아 있으라고.


최복림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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