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말] 뭐가 싫은가요?

'싫다는 건 나쁜 게 있다는 말이 아니라 공부할 때가 됐다고 알려주는 감정(感情)'이라는 전헌 선생님의 글(다 좋은 세상)을 보고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나쁜 게 있다면 없애야 한다고 배워온 우리에게 나쁜 게 없다는 말은 안심이 되는 말입니다. 없애기 위해서는 싸워야 하는데 싸울 일도 없어졌습니다. 세상에 나쁜 게 있다고 생각하면 전쟁이 일어납니다. 나는 선(善)하고 남은 악(惡)하다는 생각이 꼭 이기고 말겠다는 생각을 만듭니다.

세상에는 나쁜 건 없고, 싫은 것만 있는 겁니다. 싫은 것도 나쁜 것이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싫은 건 나쁜 게 아닙니다. 따라서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해야 하는 겁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성인(聖人)은 모두 나쁜 게 아니라 싫은 것이라는 점을 밝히려 했던 분들입니다. 싫은 것도 없으면 좋지 않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없으면 좋겠죠. 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그러기 쉽지 않습니다. 아니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병들고 죽습니다. 이것보다 명확한 삶의 진실은 없을 겁니다. 아무도 죽지 않는 사람이 없고, 살면서 아프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전에 살던 사람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경우도 없지요. 사람이라면 반드시 아픕니다. 병들고 죽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누군들 병들고 죽는 걸 좋아하겠습니까? 당연히 싫죠. 싫은 일이 눈앞에 왔을 때 좌절하고 절망하고 세상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싫은 걸 들여다보고 이 세상에 나쁜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해야 합니다.

'공부'라고 하면 좀 무겁게 느껴질 수 있겠습니다만 단순히 말하면 늘 배우는 겁니다. 배움에서 생각의 방향은 중요합니다. 나쁜 것을 없애려 배우는 게 아니라 싫은 것을 이해하려 배워야 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스승이 필요합니다. 그릇된 방향으로 가면 스스로를 망칠 수 있습니다. 싫은 건데 자꾸 나쁜 것이라고 말하게 됩니다. 싫은 게 있으면 언제나 배워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누구나 아프고 죽습니다. 그러니 공부가 필요한 겁니다.

우리말에서 '싫다'는 말의 어원이 '슬프다'와 같은 것은 참 많은 깨달음을 줍니다. 싫은 것은 슬픈 것이지 나쁜 게 아닙니다. 싫은 게 많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싫은 사람이 많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하기 싫은 일이 많은 것도 슬픈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슬픈 일이 많은 것도 우리가 피하고 싶은 '싫은 일'이기도 하죠. '슬픔'은 '싫음'과 통합니다.

생각하기도 싫은 일은 대부분 슬픈 일입니다. 그런 일은 떠올리기도 싫고, 입 밖으로 말하기도 싫죠. 혹시라도 생각대로, 말대로 이루어질 까봐 두려워하는 겁니다. '죽음'이라는 말이 싫어서 '돌아가시다'고 합니다. 어느 나라 말이나 죽음은 피하고 싶은 말입니다. 오죽하면 죽는다는 말과 발음이 같아서 '4'라는 숫자도 싫어할까요? 우리말에서는 아프다는 말도 싫어서 편하지 않다는 말 즉, '편찮다'고 합니다. 돌려서 말하는 것이지요.

싫은 것과 나쁜 것은 뭐가 다를까요? 집의 큰아이에게 물었더니 나쁜 것은 사람들이 만든 것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싫은 것은 우리 감정이 알려주는 것이지만 나쁜 것은 본래 있지 않은 것을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싫은 일,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더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지금 뭐가 싫은가요? 어떤 일이 슬픈가요? 싫은 건 나쁜 게 아니라는 것이 배움의 시작입니다. 다 좋은 걸 확인하려고 배우는 겁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