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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일의 세상 보기] 북한 진출, 덩달아 서두를 일 아니다

북한 진정성 의문…누구도 보장 못할 김정은 마음
달라졌다지만 진짜 달라진 건 핵 덕에 '쎄진' 것

대세 속 돌발 변수 널려…들뜨지 말고 냉정 대처
현대아산 정몽헌 회장 비극은 단순한 과거지사 아냐


1997년 김대중(DJ) 새정치국민회의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잔뜩 움츠려 지내던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왕 회장)은 기지개를 켭니다. 그는 92년 14대 대선 당시 김영삼(YS) 후보와 경쟁했다가 괘씸죄로 YS 집권 기간 내내 곤욕을 치렀습니다. 그의 현대그룹은 은행 대출 중지, 세무사찰 등으로 한 시도 편한 날이 없었지요. YS에 대한 그의 반감은 97년 대선 때 YS 정적인 DJ 적극 지원으로 이어졌는데 DJ가 집권하면서 날개를 단 겁니다.

1987년 명예회장으로 기업 경영에서 손을 뗀 뒤 정치판을 기웃거리다가 된서리를 맞았던 그는 DJ정부가 들어서면서 대북 사업에 빠져듭니다.

대북 사업에 필이 꽂힌 왕 회장은 몽구.몽헌 두 아들을 각각 불러 사업 추진을 지시하지요. 이 경쟁에서 몽헌이 이깁니다. 부친의 정치활동을 돕다가 YS에게 함께 혼쭐이 났던 몽헌이기에 왕 회장의 몽헌 사랑은 유달랐는데 왕 회장의 관심사인 대북 사업 구상을 똑 떨어지게 기획.추진하면서 그룹 대권은 5남인 몽헌 차지가 됩니다. 장남 몽필씨 사망으로 사실상 큰아들이 된 몽구는 현대자동차를 물려받긴 했지만 현대가(家) 대표 자리는 양보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겁니다. 현대아산 회장이던 몽헌이 대북 송금 특검이 진행 중이던 2003년 현대 사옥에서 투신자살(?)하면서 집안 대표가 되긴 했지만 말이지요. '왕자의 난'으로도 불리는 현대 가문의 얽히고 설킨 대권 승계 배경에는 이렇듯 대북 사업이 자리합니다. 대외적으론 삼성 등 경쟁 기업들을 젖힌 셈이고.



"부친의 명을 받은 몽헌 회장은 요시다라는 재일교포와 접촉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김일성 주석과 동년배로서 김 주석을 물심양면으로 돕던 조총련 지도자 요시다(모든 게 비밀리에 이뤄져 '요시다'로 통칭). 아들 요시다는 이런 인연으로 김 주석의 아들 김정일 장군과 아주 친밀한 사이였는데 몽헌이 그 줄을 잡았으니 잘 풀리는 건 당연했습니다."

"요시다라는 재일교포에게 매달 20만 달러를 주라는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당시 기준으론 결코 적지 않은 돈인데 그것도 뚜렷한 이유 없이 매달 지급하라니 곤란했습니다. 지출 도장을 못 찍겠다고 하자 몽헌 회장이 호출하더군요. 자신이 직접 챙기는 일이니 따지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따랐고, 돈을 수시로 전달하는 과정에 나도 요시다를 알게 됐지요. 요시다 덕에 주석궁과 선이 확보되자 몽헌 회장과 왕 회장은 펄쩍 뛰며 반색했습니다. 청와대도 반색했고… 이후는 손발이 척척 맞았습니다. 현대가 대권은 몽헌 회장에게 확실히 넘어왔고요."

"1998년 6월 왕 회장은 '통일소'라고 이름 붙인 소 500마리를 몰고 판문점을 넘습니다. 네 달 뒤 다시 500마리를 북한에 보낸 데 이어 11월에는 유람선을 이용한 금강산관광 사업을 시작합니다. 실제는 앞서 보낸 소 1마리가 죽었다고 해서 501마리를 보냈지요. 그리고 다음해엔 현대건설이 평양에 체육관 건설에 착수합니다. 왕 회장 사후 3년 뒤에 '류경정주영체육관'으로 개관했고. 북한의 왕 회장에 대한 기대와 성원의 징표로 봐도 무관합니다. 지난 5년 동안 50만 명이 굶어 죽는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친 북한에게 외부 지원은 절실했었고 그럴 즈음의 대북 지원은 딱 들어맞은 셈이죠. DJ 청와대도 이런 왕 회장을 적극 지원하면서 2000년 제1차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됩니다."

회장 비자금을 담당했던 A씨를 비롯한 현대 핵심 관계자들의 전언입니다. 충직과 치밀함으로 회장의 신뢰를 받은 A씨는 "대북 사업의 중대.필요성에 비춰 (북한에) 돈을 좀 주는 게 무엇이 문제냐"고 반문합니다. A씨는 박지원 장관(현 의원)의 150억원은 푼돈에 불과하다면서, 이른바 대북송금 수사에서 드러난 4억5000만 달러나 권노갑 비자금으로 '잘못 알려진' 3000만 달러는 '일부'에 불과한 게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이 쪽'이건 '저 쪽'이건 큰 사업을 위한 뒷돈은 감수해야 한다는 얘기지요.

당시 현대 핵심들은 국정원 계좌를 통해 '상당액'을 보낸 것은 맞지만 헛돈 쓴 게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북한의 사업에 참여하면 상당 부분을 건지게 되니까 길게 봐야 한다는 겁니다. 왕 회장의 복안도 이런 것이었다는 것이지요. 큰 그림을 그린 대기업인 다운 배포를 읽으라는 겁니다. 그러나 북한이 언제 딴소리를 할지 모르므로 무모하고 성급하게 대드는 자세는 금물이라고 조언합니다.

이들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에 5000억 달러를 연차적으로 지원한다고 하더라도 크게 문제될 게 없다고 말합니다. 비록 불발에 그쳤지만 20년 전 일본이 북한과 국교정상화 교섭을 할 때 제시한 금액이 100억 달러가 넘었으니 설령 8000억 달러가 된들 어떠냐는 식입니다.

"일각에선 왕 회장의 대북 사업이 지금은 북한 관할 지역인 고향 강원도 통천군 아산리에 대한 향수가 크게 작용했다고 말합니다. 청년시절 짝사랑했던 고향 처녀에 대한 그리움도 한몫했다는 거지요. 왕 회장은 선생님이 된 그 처녀에게 잘 보이고 싶어 열심히 돈을 벌었다(17세 때 부친의 소 판 돈 70만원을 들고 가출)는 추억담을 여러 차례 토로하기도 했으니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 북한 최고지도부와 친분을 쌓은 뒤 우선 부탁한 게 그 여선생 수배였으니까요. 그러나 최우선은 역시 사업일 겁니다. 북한에 큰돈을 주더라도 사업을 따내면 상당액은 되찾는 게 된다는 게 왕 회장의 구상이었습니다."

4.27 판문점 공동선언 이후 서울에선 해빙의 봄이 왔다며 난리 법석입니다. 한반도, 나아가 세계적 '평화의 사도'가 된 김정은 위원장의 인기는 연일 상종가를 칩니다. 모 대학교수가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4.27 이후 긍정 이미지가 4.7%에서 48.3%로 폭등했습니다. 부정 이미지는 87.7%에서 25.8%로 급감했고요. '독재자.핵.잔혹.고도비만.폭력적'에서 '솔직.호탕.젊은.유머 있는.귀여운.생각이 트인'으로 바뀌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돈 냄새에 민감한 기업들이 뒤쳐질 리 없고요. 정부는 동해선 철도 연결 사업이니 뭐니 하며 장밋빛 구상을 토해내고, 기업들은 대박 열차를 놓칠까 안달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북한이 진짜 마음을 열고 약속을 지킨다면 기회가 열리는 게 틀림없습니다. 현 정부가 돌이키기도 어렵게 '대못'을 박아 놨으므로 북한 장세가 대세임이 분명하기도 하고요. 대북 지원액 3분의 1 참여에 미달하더라도 연쇄적 상승 효과가 대단할 터이니 호재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돌발 경우도 생각해야 지요. 젊은 위원장 마음이 달라져(달라진 것인지, 애당초 그랬던 것인지는 미지수이나) 문을 닫으면 어찌 될까도 생각해봐야죠. 개성공단 사태쯤은 비교도 안 될 험하고 위태로운 상황이 연출될 겁니다. 현대아산 몽헌 회장의 비극은 단순한 과거지사가 아닙니다.


김현일 /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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