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삶의 뜨락에서] 마른 깻잎에도 새싹이

우리 집은 뒷마당이 넓고 길다. 길어서 채소밭에 물주는 것은 포기 했다. 호스 몇 개를 연결해도 끝이 보이지 않고 물통에 물을 나르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새싹이 날 때는 참 신기하고 예쁘고 실낱 같은 푸른색이 하루가 다르게 땅을 뚫고 올라오는 모습이 좋아 시간을 쪼개어 가꾼다. 그것도 몇 해를 하다 보니 싫증이 났다. 가을에 깻잎 나무를 잘라 깨끗이 정리를 했어야 했는데 지난 가을 귀찮아 그만 그대로 놔두어 버렸다. 봄이 되어 싹이 나는데 풀보다 먼저 나고 잡초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뽑고 또 뽑아도 며칠 뒤에 가보면 빼곡히 자라났다. 띄엄띄엄 몇 개씩 남기고 뽑는데도 어디에 숨었다 또 나온다. 문제는 자라고 있는 깻잎 옆에 수북이 나오는 깻잎 때문에 건실한 것도 자라지 않고 비실비실 하다. 오늘은 화가 나서 모서리 구석에 있는 것만 제외하고 다 뽑아 버렸다. 모기는 윙윙 대고 땀은 등줄기에서 흐르고 햇빛은 얼굴을 찌르고 내가 왜 이렇게 깻잎과 싸워야 하나 질문을 해 봤다. 농사를 지어도 한두 번 반찬 해먹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날짜를 정해놓고 따서 나누어 주는 재미다. 큰 나무 그늘 아래서 자라 연하다. 잎이 크고 그다지 정성을 들여 물을 주지 않아도 잘 큰다. 받은 사람마다 싱싱하고 연해서 맛있었어요. 하는 찬사가 내 마음을 야채 밭에 잡아 놓는다.

아침 가게 문을 열고 불을 켰는데 내 뒤를 바싹 쫓아 왔는지 길거리에서 빈둥대는 녀석이 혀 쪼그라지는 소리로 1달러를 달라고 한다. 필요한 이유를 물었더니 커피 마시고 싶다고 했다. 정말 얄미운 녀석이다. 심심하다 싶으면 가게 앞 스위치를 눌러 불을 끄고 도망가고 또래들을 몰고 가게에 들어와 거울을 보면서 히쭉 거리고 해코지 할까 봐 두렵다. 어쩌면 뽑아서 버리는 깻잎과 똑 같다. 며칠 전 배가 고프다며 돈을 요구했다. 내가 빵과 커피는 사준다. 하지만 돈은 주지 않겠다고 큰 소리로 말했다. 며칠 동안 커피와 빵을 사주면서 마음을 다독였다. 그리고 제안했다. 빵을 사줄 테니 너도 일을 해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질색을 하더니만 하루 이틀 지나면서 일을 하겠다고 한다.

우리 손님 중에 우체국장을 은퇴하고 트럭을 사서 목수 일을 즐기는 멋쟁이가 있다. 그 사람이 왔기에 허드레 일을 시켜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한참 망설이다 응했다. 제 마음대로 살아 시간 지키는 것이 어려웠다. 몇 시까지 나오라고 하면 대답은 했지만 30분이 지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잔소리 안하고 점심 사주며 시시콜콜한 이야기 주고받으며 정을 붙이게 만든 우체국 아저씨. 어제는 나보다 일찍 가게 앞에 서서 나를 기다린다. 손에는 봉지가 들려 있다. 웃으면서 커피를 샀다고 내 손에 건넨다. 커피하고 놀랬더니 임금을 받았다며 이제는 열심히 일하겠다고 약속했다. 서로가 반갑지 않은 일이지만 조금 비우고 받아들인 결과는 뜻밖이었다.


양주희 / 수필가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