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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우에 핀 꽃] 상좌 하나에 지옥이 하나

주훤/화엄사 주지 스님

각성 포교원에 있을 때,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찾아 온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당시 형편에 아이를 키울만 한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데리고 키웠다. 그 때까지 나를 스승으로 모시겠다고 찾아오는 자는 속리산 법주사나 큰절로 보냈다.

내가 상좌를 못 키운다기 보다는 많은 스님이 사는 대중 속에서 살아 봐야 자기의 결점을 발견하기도 쉽고 상대에게 배려하는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출가한 자가 대중처소에 살아보지 못하고 암자나 작은 절에서만 산다면 독선적으로 빠지기 쉽다.

승려는 대중 처소나 토굴 같은 작은 수행처에서나 자유 자재로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항상 생각한다. 이런 뜻에서 큰 절로 보냈지만 어찌된 영문인 지 한 명도 나를 스승으로 삼아 계를 받는다는 연락이 온 일이 없다. 지금 우리 동기생들을 보면 상좌는 물론 손 상좌까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이 많은 사람은 그렇다 치고 이따금 아이들이 올 경우에는 큰 절에 보내기 전 데리고 교육하는 도리 밖에 없다. 아무튼, 나는 아이 한 명을 데리고 있으니 장차 공부를 시키자면 한문이 필요하기에 하루에 몇 자씩이라도 가르쳤다.



그런데 의외로 아이가 공부를 하려하지 않아 상당히 애를 먹었다. 그 어린 나이답지 않게 순수하지 못하고 순간만 모면하려는 식으로 머리가 굳어져 몇 자 되지 않는 한문을 외워 쓰는데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별 커닝을 다하는 아이였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모르겠는가! 아이가 커닝하는 것은 여지없이 내 눈에 유난히 띈다. 사람의 공부는 누구를 위해서인가?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다. 공부란 하고 보면 참으로 좋은 것이지만 취미가 붙지 않은 사람에겐 참으로 어려운 일일는지도 모른다.

‘상좌 하나에 지옥이 하나’라는 말이 있다. 아이를 키우듯 상좌를 거두는 것도 속을 많이 썩어야하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나는 내가 아이를 잠깐이나마 키워본 덕에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안다. 부모와 자식 간에 태어남은 우리의 상상을 불허하는 은혜와 빚 가림의 만남이라 할 수 있기에 끝없는 사랑과 슬픔이 오가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아이 키우며 참고 참는 그 마음은 참 보살님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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