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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모자의 위력

따가운 햇살에 한창 익어가는 복분자는 다람쥐가 쳐다보지도 않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긴 소매, 긴 바지, 창 넓은 모자 쓰고 중무장 차림으로 수 억년의 적인 모기를 방어하며 느긋하게 뒤뜰에 나간다. 윤기 흐르는 검은 베리, 토마토, 오이, 깻잎, 고추를 한꺼번에 거두어 오는 재미가 요즈음의 즐거움 중의 하나다.

그런데 낡은 밀집모자지만 이것이 더위에는 참으로 요긴하게 쓰인다.

모자를 쓰는 용도는 주로 햇빛과 비바람을 막아주고 추위나 더위로부터 보호한다거나, 신분의 표시, 예의로 쓰던 것이 지금은 완전이 패션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경찰이나 군인처럼 상징적으로 쓰고 다니기도 한다.

모자 말이 나왔으니 생각나는데 수십 년 전 어느 혹독하게 추웠던 월요일 아침 남편은 지하실 보일러를 올리고 모퉁이를 돌아서 은행에 잠깐 나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갑자기 지하실에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인지 먼지인지가 틈 사이로 사정없이 올라온다. 소방차가 오는 동안 다림질하러 나온 이태리 할아버지에게 빨리 은행에 있는 남편에게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할아버지가 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서 다시 돌아오신다. 이유를 급하게 물었더니 모자를 잊어버리고 나가서 가지러 돌아왔단다.



내 주위에 어떤 분은 모자쓰기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즐겨 사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전쟁에서 훈장으로 받은 머리에 흉터를 숨기기 위함인 것 같다. 여행지마다 모자는 항상 사오고 어디를 가도 모자는 잊지 않고 구입해 온다. 이 많은 모자 중에서도 언제부터인가 주로 해병대 팔각 모를 애용한다.

어느 날 저녁 어떤 회의가 늦게 끝나서 열한 시나 되어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시간이 늦으니 물론 고속도로가 확 뚫려 있어 집에 빨리 갈 생각만 하고 좀 달렸나 보다. 다리를 건너자 마자 어디에서부터인가 경찰차가 따라오며 정지시켰다. 정신이 번쩍 들어 차를 세우고 무조건하고 해병대 모자를 벗고 보니 구십 마일로 달렸단다. 이때는 무조건하고 미안하다고 하니 당신 해병대 캠프가 어디였냐고 묻는다. 무심코 주둔지를 말하니 경찰아저씨 왈 오늘은 주의만 줄 테니 속도 내지 말고 조심해서 집에 가란다.

팔각모자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이 모자를 쓰는 분들은 대단한 자긍심을 가진 분들이다. 어느 좌석에서나 이 모자를 보는 순간 외국인들도 무조건 경례부터 하고 자기들만이 통하는 십 년 지기가 되어 인사를 하고 바로 월남전 이야기로 시작한다.

위대한 태양빛을 막아주고 빗물이나 눈보라로부터 머리를 보호하는 모자, 만인을 고개 숙이게 하는 왕관, 군중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패션 모자, 모든 모자가 위력이 대단하다. 이 나라의 국가에 대한 애국심과 지구의 각처에서 모여 살고 있는 이 거대한 도시를 세계 제일의 안전한 도시로 이끌어가는 경찰모자의 힘도 빠질 수 없는 참으로 놀랍고 존경 할만하다.


김동주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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