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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젖은 낙엽

낙엽(落葉)은 나뭇가지 끝을 떠나 떨어진 또는 날아오른 잎사귀입니다. 물기를 잃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기도 하고 힘없이 이리저리 굴러다니기도 합니다. 낙엽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가까이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낙엽은 한 세상을 살고 떨어진 것이기에 처량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런 저런 미사여구로 낙엽을 칭송하기도 하나 낙엽은 그저 쓸쓸함 자체입니다.

그럼에도 낙엽은 보는 이에 따라 느낌이 달라집니다. 같은 대상이라도 심정에 따라 달리 보인다는 것은 많은 깨달음을 줍니다. 마음의 중요성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사춘기 여고생은 굴러다니는 낙엽만 봐도 까르르 웃습니다. 떨어져 있는 힘없는 모습에 애달픔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모습이 재미있는 것이죠. 돌돌 말려있는 모습이 '개똥'을 닮기도 했습니다. 개똥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가 힘없이 굴러가는 낙엽임을 알게 되니 우스울 수밖에 없겠네요. 어린 아이가 낙엽을 보고 슬픔을 느낀다면 그것도 이상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낙엽에 자꾸 감정이입이 됩니다. 끝나는 것, 떨어지는 것은 인생의 종착역을 닮아 있습니다. 낙엽이 안쓰럽게 매달려 있다가 짧은 비행을 끝으로 바닥을 향하는 것은 아무래도 짠한 느낌이 있습니다. 동병상련의 마음이 들기 때문이겠죠. 부정할 수 없는 감정의 변화입니다. 나무 아래 수북이 쌓여있는 낙엽을 보면서 외로워도 서로 의지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켜켜이 쌓인 낙엽은 가을비나 서리에 젖어 땅바닥에 딱 붙어 있기도 합니다. 때론 젖은 낙엽의 빛깔이 더 선명하게 아름답다는 생각도 합니다. 단풍이 나뭇가지에서보다 바닥에서 더 빛이 나기도 한다는 점이 생각거리를 주네요. 우리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곳에서 자신의 빛을 발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나뭇가지의 단풍이 아니라 바닥에 젖은 낙엽에서처럼 말입니다.



젖은 낙엽은 일본어로 '누레 오치바'라고 합니다. 이 말은 아내의 곁에 꼭 붙어있는 남편을 가리킵니다. 젖은 낙엽이 바닥에 딱 붙어 떨어지지 않음을 비유한 것이겠죠. 젖은 낙엽은 당연히 젊은 남편은 아닙니다. 젊을 때는 그렇게 나돌아 다니더니 나이 먹고 힘이 없어지니 아내의 곁에 파고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로 중년 이후의 남편을 의미하고, 은퇴한 이후의 남편을 의미합니다. 자식이 출가하고 나면 더 젖은 낙엽이 됩니다. 젖은 낙엽이라는 비유가 재미있으면서도 처량합니다. 참 적절한 비유라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말에서는 껌 딱지나 매미라는 비유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줄여서 껌이라고도 합니다. 붙어서 안 떨어진다는 점에서는 젖은 낙엽과 비슷하지만 왠지 귀여운 느낌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껌은 젊은 연인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서로 붙어 다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겠네요. 매미도 나무에 붙어 있는 모습이 떨어지기 싫어하는 사람을 비유합니다.

젖은 낙엽이라는 비유를 보면서 남 이야기 같지 않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가장 서로 의지할 사람은 부부일 겁니다. 그래서 젖은 낙엽은 어쩌면 부부에게 서로 해당하는 표현이어야 할 겁니다. 누구는 젖은 낙엽이고, 누구는 마른 낙엽이라면 즐거울 수 없습니다. 날이 갈수록, 해가 갈수록 서로를 귀하게 생각했으면 합니다. 젖은 낙엽이 더 선명하게 빛난다는 말이 왠지 위로가 됩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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