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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TALK] J는 행복하다

J를 처음 알게 된 때는 2000년대 초반으로 기억된다. 그는 필자가 유학하던 대학의 학부생으로 입학한,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밝고 발랄한 친구였다. 컬러가 다른 두 종류의 운동화를 구입해 한 짝씩 다르게 신고 다니던 엉뚱함도 있었고, 영어실력이 꽤 훌륭해서 주변의 놀라움을 주기도 했다. 바이올린 실력도 남달랐지만 가장 놀라운 건 그의 노래실력이었다. 그가 악기를 연주하는 것보다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이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이유이다.

대학 4년 동안 J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학생이었다. 학교 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 선발되기도 했고, 오디션에서 우승하여 협연자로 큰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가 구성한 현악사중주단은 학교의 대표 자격으로 투어를 다녔고, 음대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간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특유의 친화력까지 갖췄다.

겉에서 보기에 밝고 아무런 걱정이 없어 보였던 J였지만, 선교사를 꿈꾸던 목사 아버지를 암으로 떠나 보내고 어린 시절부터 홀어머니와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음악을 배운 것도 선교지에 나가면 당장 피아노 칠 사람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 출석하던 교회를 통해 미국인 목사를 알게 되었는데, J의 성장 배경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알아본 목사가 그의 미국행을 제안했던 것이다. 그 목사는 직접 낳은 자녀와 더불어,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입양해 키우고 있었는데, 여기에 한국에서 온 J의 앞날까지 책임지게 되었다.

목사 부부가 살던 지역에서 1시간 남짓 떨어진 곳에 위치한 대학을 찾아 선생님을 만났고, 몇 년 후 그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는 졸업 직후 결혼에 골인해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학업을 이어갔다. 엔지니어였던 남편은 최선을 다해 아내를 후원했고 J는 동부의 두 명문 학교에서 대학원 과정을 이어갔다. 또한 그는, 곡을 쓰고 가사를 붙인 곡들을 모아 직접 노래한 음반을 출시하는 일까지 시작했다. 바이올리니스트로 남기에는 작곡과 노래실력이 아까웠고, 그렇다고 연주자의 길을 접기에는 J의 재능이 너무 빛났다.



인생은 반전의 연속이라고 했던가. 커리어의 정점을 행해 순항하던 J는 지금 요르단에서 가장 빈민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다는 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남편 역시 같은 학교에서 수학 선생님으로 재직 중이다. 자르카는 인구 150만의 요르단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지만 최근까지만 해도 피아노가 한 대도 없었던 음악의 불모지이다. 요르단 사람들 조차 탈출하고 싶어 하는 곳이다. 그들의 사연이 어찌 되었건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현장에서 살고 있는 둘의 속마음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필자는 지난 연말 요르단을 찾아 부부가 일하는 학교 아이들과 자르카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음악회를 열었다. 클래식 음악은커녕 바이올린이 어떻게 생겼는지 실제로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궂은 날씨에도 300여 석의 오디토리움이 만원을 이뤘고 음악회는 성황리에 마쳤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모아 열었던 작은 음악회에서 만난 반짝이던 수많은 눈동자는 그 어떤 음악회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감동 그 자체였다.

사람마다 꿈도 길도 각각이다. 의사가 된 비올리스트가 있는가 하면, 콩쿠르에 실패한 플루트 연주자가 대기업 광고 책임자가 되기도 한다. J는 행복하다. 그는 남들이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곳을 찾아가 현지 아이들에게 사랑을 쏟는다. 누가 그를 가리켜 꿈을 포기한 음악가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나를 선택하는 순간 다른 더 많은 가능성이 열린다. 나를 뛰어넘어 남을 볼 수 있을 때, 앞으로 다가올 총천연색 현실을 용감하게 마주할 수 있게 된다.


김동민 / 뉴욕클래시컬플레이어스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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