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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자유와 사랑⑤

차재승 / 뉴브런스윅 신학대학원 교수
차재승 / 뉴브런스윅 신학대학원 교수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8/05/22 종교 18면 기사입력 2018/05/21 23:21

루터의 자유사상 <2>

지난 칼럼에서 루터의 자유사상은 수동적 '의' 주어진 '의'를 강조하는 자유됨이라는 점을 다루었다. 이 자유됨은 기독교인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루터는 비기독교인의 자유를 부정하는가? 또한 기독교인의 자유됨만을 인정하기 때문에 능동적 자유함을 부정하는가?

먼저 루터의 자유사상은 인간의 자유일반을 결코 완전히 부인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서 루터는 땅위의 생물을 다스리는 인간의 지성은 타락 후에 상실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정되었다고 하면서 그러나 남아있는 지성이 훼손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무지한 철학을 따르는 것이고 남아있는 지성이 죄와 악의 지배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인간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인간에 관한 논쟁 8-9 24-26). 즉 지성이 남아있지만 지성이 부패했기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을 작용인(efficient cause)으로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인해서 앞으로 일어날 변화와 영광을 목적인(final cause)으로 삼을 때 철학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데 지성의 처소인 하나님의형상은 이러한 자유의 그릇이다. 둘째 그리스도인은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는 수동적인 자들인가? 기독교인의 자유에 대한 루터의 사상은 그의 초기작 기독인의 자유에서 잘 드러난다. 루터는 우선 성경을 해석하는데 인간은 자유를 누린다고 말한다. 성경해석뿐만 아니라 모든 다른 면에서 자유를 가르치는 성경은 그 어떤 것에도 구속되지말아야 하기 때문에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어떤 정해진 법칙이 없다고 주장한다. 상당히 파격적인 주장이다. 그런데 기독인의 자유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부분은 자유의 역설에 관한 루터의 심오한 사상이다. 자유에 관한 본론에서 루터는 기독교인의 자유가 가지는 양면성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전개하고있다.

"…나는 자유와 성령의 구속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두가지 진술을 펼치고자 한다: 기독인은 그 어느것에도 종속되지 않는 모든 것에 완전히 자유로운 주인이다. 기독인은 모든 것에 종속되는 모두에게 완전히 의무를 다해야 하는 종이다. 이 두 주장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만약 이 둘이 서로잘 맞게 되면 우리의 목적을 아름답게 이룰 것이다. 이 둘 다 '내가 모든 것에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었다'고 고린도전서 9장19절에서말한 바울의 주장이다."

즉 기독인은 자유에 관해서 주인이자 종이라는 의미이다. 전자 즉 자유의 주인이라는 사상은 사실 그리스도로 자유됨을 얻은 수동적 자유를 의미한다. 그런데 후자 즉 다시 종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우선 루터는 인간을 내적 영적 면과 외적 육적 면으로 구분한다. 전자에 따르면 믿는 자는 그리스도와 연합되기 때문에 그 어떤 것에도 종속되지 않는 전적인 자유를 누린다. 그런데 후자 즉 외적인 면에 관한 한 땅의 일에 관한 한 우리는 모든 종류의 일을 하는 종이다. 더 나아가 기독인이 모든 것에 종인 이유는 두 측면을 가진다. 우선 그리스도로 인해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자는 더 이상 자신의 이득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기쁘게(joyfully) 섬기고 사랑한다.

또 다른 종의 도는 이웃을 향한 것이다. 루터는 이 주제와 관련해서 대단히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기독인은 죽은 몸을 가지고 일을 할 때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땅위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산다."

예수께서 자신을 내게 주셨듯이 나 또한 이웃에게 내 자신을 자유롭고(liberaliter) 기쁘게(hilariter) 내어준다. 기독교인은 역설적으로 자유됨으로 인해서 가장 강렬한 자유함을 누리는 자들이다. 다음 칼럼에서는 캘빈의 자유사상을 다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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