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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계단에 앉아있는 당신

윤지영 / 시인·뉴저지
윤지영 / 시인·뉴저지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8/05/26 미주판 16면 기사입력 2018/05/25 16:22

계단은 착하지 않다

좁은 구석에서 피곤한 다리를 뻗거나 굽은 등을 기댈 때도

계단은 제 몸을 좀처럼 펴주지 않는다

오르려던 일이었는지 내리막길이었는지 늘 중간쯤에 앉아

내 몸에 저장되어 있는 모든 기억들의 되돌이표를 더듬는다

오후의 볕은 조금 위를 비추거나 발 아래로 모여든다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내 좁은 어깨는 숨을 헐떡이며 뛰어오르는 사람들에게 디딤돌이 되어준다

계절은 순서대로 오지 않아

물 오른 꽃 대궁 하나가 내 몸을 타고 오르더니 한동안

불안한 침묵이 보이고

꽃을 피우려던 낯익은 바람 한 점 내 머리를 후려친다

흔들리는 계단에는 놀란 어미들의 손이 모여든다

고개를 완전히 꺾어야만 보이는 저 높은 길에는

흘려보내지 못한 검고 오래된 물들이 고여 있다

계단은 하루도 조용하지 않다

눈을 감고도 눈앞의 높낮이를 평평하게 걸어갈 때

약속한 저녁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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