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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 에세이] ‘잊을 수 없는 미소’

찰스 부코스키(Charles Bukowski,1920-1994)는 독일 태생의 미국 시인이다. 미국 원정군으로 일차대전에 참전해 유럽에 파견되었던 아버지는 독일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현지에서 아들을 낳았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아버지는 가족을 데리고 LA에 정착했다. 찰스는 어려서부터 하층사회에 빠져 들었다. 화차를 타고 전국을 떠도는 거지(소위hobo) 생활을 하면서 최하층 인간들과 어울려 사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다. 화차가 머무는 곳이면 아무데나 내려 닥치는 대로 잡일을 했다. 1952년에 우체국 직원으로 고용되면서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LA를 중심으로 한 비참한 현실을 고발했고 시와 산문을 통해 알코올 중독자, 마약환자, 범죄자, 매춘부등 사회에서 소외된 군상을 묘사하여 1960년 대 아웃사이더의 영웅이 되었다.

비록 그의 작품이 미국 동부 문단에서는 크게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유럽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탔다. 그의 작품은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독일어는 물론 그리스어나 크로아티아 언어로도 번역되었다. 1984년 브라질에서 그의 작품 3권이 모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당시 그의 작품을 접한 사르트르, 장 주네를 위시한 많은 유럽 작가들은 그를 ‘미국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고 극찬했다. 1986년TIME 주간지는 그를 미국 서민의 계관시인이라고 칭했다. 필자는 십 여 년 전에 우연히 이 시인을 발견하여 한국 문단에 소개한 바 있다.

일차대전이 끝나고 가족이 귀국했을 때 미국은 대 공황에 빠져 들었다. 아버지는 실업자가 되었고 울분과 좌절을 술을 마시고 아들과 부인에게 풀려했기 때문에 가정 내에는 심한 폭력과 학대가 있었다. 당시를 표현한 작품으로 ‘잊을 수 없는 미소’(A Smile to Remember)가 있다.

“우리 집에는 금붕어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큰 창문을 가리는 두꺼운 커튼 곁 테이블 위에 놓인 항아리에서 빙빙 돌아다녔다. 어머니는 항상 미소를 띠면서 우리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며 ‘헨리야, 행복해라(어린 시절 시인의 이름, 독일에서는 하인리히였음)’라고 말했는데 어머니말씀이 맞았다. 될 수만 있다면 행복해진다는 것이. 아버지는 6피트 2인치의 거구로 화를 내며 어머니와 나를 일주일에도 몇 번 씩 때렸다. 무엇이 자신의 안으로부터 자기를 공격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불쌍한 어머니는 일주일에 두 세 번 씩 얻어맞으면서도 행복해지고 싶어서 ‘헨리야, 웃어. 왜 웃지 않는 거냐’ 그리고 그녀는 내게 시범을 보이기 위해 얼굴에 미소를 지었지. 그것은 내 일생에서 본 가장 슬픈 미소였어.



하루는 금붕어가 죽었다. 다섯 마리 전부가. 그들은 물 위로 떠올라 눈은 아직도 뜬 채 옆으로 누었지.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자 그는 우리가 보는 앞에서 죽은 금붕어를 모두 부엌 마루에 앉아있던 고양이에게 던져 주었지. 어머니는 계속 미소를 띠우고 있었고.” (전문)

19세기 말 프랑스의 신경학자인 뒤센느(G.B. Duchenne)박사는 사람이 미소를 지을 때 한 가지 이상의 표현 방법이 있음을 밝혔다. 편안한 상태에서 웃을 때에는 대관골근(Zygomatic major)의 작용으로 입 꼬리가 올라가며 동시에 구륜근(Orbicularis oculi)의 수축으로 눈이 약간 작아지고 눈 꼬리가 조금 올라가며 눈 밑에 처진 살이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우울증 환자가 이런 미소를 보이면 마음 상태가 호전된 신호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불편한 심경에서 짓는 미소에는 대관골근만 수축될 뿐 구륜근은 움직이지 않는다. 환자가 자살의 집념을 감추는 웃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자연스러운 미소는 입 꼬리가 올라가면서 눈웃음이 따르고 부자연한 미소에서는 눈웃음 없이 입 꼬리만 올라간다. 입 꼬리가 올라가는 데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면 이것은 ‘쓴’ 웃음이 될 것이다.

요즈음 사용되는 신조어에는 ‘웃프다’란 표현이 있다. 웃고 싶은 감정과 슬픈 감정을 동시에 나타내든가 또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슬픈 상태를 말하는 듯싶다. 아마도 부코스키 어머니의 얼굴 표정이 이런 양가(兩價)감정을 나타낸 것이 아닐까한다.


정유석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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