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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거촉

오해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제 생각에 빠져 남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해 타자의 뜻을 엉뚱하게 해석하는 경우, 아예 고의로 남의 말을 자신의 생각에 합쳐버리는 경우 등이다.
오해는 오해다.
때론 그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지 모르지만 제대로 생각하고 인식하려면 오해는 피하는 게 우선이다.


오해가 엉뚱한 결과를 빚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춘추전국시대의 중국이 배경이다.


강국의 면모를 과시하던 초(楚)나라 수도에 살던 한 사람이 북방에서 움츠려 있던 연(燕)나라의 재상에게 편지를 쓴다.
편지를 쓰는 저간의 사정은 짐작할 수 없지만 아무래도 나라끼리 주고받는 문서였던 듯싶다.


이러쿵저러쿵. 자신의 집에서 연나라 재상에게 편지를 작성해 내려가던 참에 문제가 생겼다.
날이 더 어두워진 것이다.
초나라 사람은 앞이 잘 보이지 않자 “촛불을 들라(擧燭)”고 말한다.
옆에서 거들던 시종이 초를 더 들어올려 주변을 환하게 밝혔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서 작성자는 그만 자신이 써내려가던 글에 스스로 내뱉은 말을 집어넣고 말았다.


나라끼리 주고 받는 문서에 ‘촛불을 들라’라는 말이 들어갔으니 모르고 읽는다면 대단한 파격이었을 것이다.
이 본의 아닌 실수를 접하는 연나라의 반응이 재미있다.
우선 편지를 손에 받아든 연의 재상은 기뻐한다.
‘촛불을 들라는 것은 결국 어둠을 몰아내고 현명한 인재를 널리 구하라는 메시지 아닐까…’. 편지를 요모조모 읽던 재상이 마지막에 내린 결론이다.


재상이 자초지종을 확인하지 않은 채 내린 해석은 연나라 왕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연나라는 초나라의 이 엉뚱한 문장을 ‘밝음을 숭상하라(尙明)’의 뜻으로 확정한다.
연은 이에 따라 인재 등용에 적극 나섰다는 게 얘기의 결말이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고사로, 견강부회와 남의 뜻을 잘못 해석하는 자의 어리석음을 경계하고 있다.


촛불을 든 국민의 행동을 곡해하는 자가 여럿 있다.
대의정치에 대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촛불 사이에 끼어 앉았던 통합민주당, 사태의 본질적인 대처에 짬이 없을 듯하면서도 어느덧 권력투쟁으로 옮아가는 한나라당. 민생불안의 그림자에 눌려 거리로 나선 참가자 일부를 청와대로 몰고가 ‘정권 퇴진’을 부르짖는 사람들.

한비자가 전한 이야기의 결말이 해피엔딩이라는 점에 행여 위안을 느끼지 말라. 『예기(禮記)』는 “털끝만큼의 오차가 있으면, 나중엔 천리를 잃는다(差之毫厘, 失之千厘)”고 했다.
국가 운영에 나서는 사람들에게 주는 가르침이다.
위정자들은 나중에 크게 잃을지도 모른다는 점에 먼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 정도 책임의식은 있어야 한다.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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