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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이의 ‘스물한 살 비망록(備忘錄)’

“UBC에서 일하는 사람들…”
은색 벤츠 몰고 와 식당서 일하는 써니 아저씨

내게는 아버지 같은 아저씨가 한 분이 계신다.
이 분은 한국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 아주 짧은 영어로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눌 뿐이다.
말보단 서로의 얼굴 표정으로 또 다듬어진 몸짓으로 대화를 나눈다.
그렇게 아저씨와 나는 점심 시간마다 약 200명 가량의 학생들에게 파스타를 만들어 준다.




약 3년간 매일 4시간이 넘는 시간을 이 반복되는 일들을 하며 보냈다.
아마 아저씨는 내가 대학교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한 사람일 수도 있다.
이제는 서로를 너무 잘알고 있어 마치 가족같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UBC 푸드코트에서 써니 아저씨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아저씨는 약 22년간 UBC에서 음식을 만들어 오셨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곳에서 날마다 같은 일을 해오신 것이다.


음식 손질 부터 200명이 넘는 손님들을 대접하는 것까지… 나는 3년간 아저씨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는 것을 본적이 없다.
늘 한결같이 언제나 그 자리에서 사람좋은 웃음을 짓고 계신다.


많은 학생들은 아저씨를 잘 따른다.
음식을 기다리며 아저씨께 이 얘기, 저 얘기를 하곤한다.
수업이 어렵다느니, 학교 교육 체계가 잘못 됐다니 등등. 가끔은 이미 졸업한 학생들도 찾아와 아저씨께 인사를 하기도 한다.


학기가 끝날 때면 학생들이 찾아와 카드를 남기는 경우도 있었다.
“언제나 맛있는 점심을 만들어 줘서 고마워요,” 라는 말과 함께… 아마 이들도 나처럼 이 변함없는 아저씨의 꾸준함과 한결같음에 존경을 표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아저씨는 중국 사람에 대한 나의 선입견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아저씨는 사실 개인 음식점을 가지고 있다.
배달 전문 음식점인데 꽤나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보통 가게는 오후 4시에 열어 새벽 2시에 문을 닫는다.
가게 문을 닫으면 아저씨는 아침 9시부터는 UBC에서 일을 한다.
하루에 두 가지 일을 그것도 하나는 근로자로써 또 다른 하나는 주인으로써 병행 하는 것이다.


한 번은 커다란 은색 벤츠 차를 몰고 다니는 아저씨께 여쭈워 본적이 있다.
“아저씨 왜 이 일을 하세요?” 아저씨 대답은 간단했다.
“낮에 가만히 있으면 심심하니까.” 또다시 개구쟁이 같은 표정으로 푸드코트 이곳 저곳을 다니며 장난을 치신다.
이런 아저씨 주변엔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UBC푸드코트에는 유달리 많은 중국 사람들이 일을 한다.
이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15년이 넘게 일하신 분들이다.
계산대부터 음식 그리고 쓰레기 청소 등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으신다.
이분들은 UBC에 고용된 노동자들이다.
모두 내게 이모, 삼촌 같은 분들 이시다.


학교에 다닐 때 매니저 몰래 점심을 꼭 챙겨 주시곤 한다.
수업이 끝난 후엔 커피를 가지고 가라고 말하신다.
설날에는 내게 중국말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말하라고 시킨다.
그러면 빨간 봉투에 돈을 넣어 새뱃돈을 주시곤 한다.
이 분들께 받은 사랑은 UBC란 학교에서 나를 지탱해 주는 큰 힘이다.


이 분들은 대부분 써니 아저씨처럼 본업을 가지고 있다.
레스토랑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도 있고 사업을 하시는 분들도 있다.
학교에서는 하얀 유니폼을 입은 이분들의 모습이 익숙하다.


아마 밖에서는 검은 정장이 더욱 잘 어울릴 것이다.
이분들이 이렇게 오랫동안 UBC의 하얀 유니폼을 입는 이유는 한 가지다.
바로 UBC에서 노동자들에게 제공해 주는 이득 때문이다.


UBC는 푸드코트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에게 몇 개의 학교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많은 분들이 이 기회를 모아 두웠다가 자녀들에게 물려 준다.


대부분의 자녀들은 UBC에서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 공부를 한다.
몇 십년간 쓰레기를 청소하면서 자녀들에게 최고의 교육의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어느 자녀가 부모님이 몸으로 만들어 준 교육환경을 두고 최선을 다하지 않을수 있을까?

한 번은 겨울 방학 때 써니 아저씨 가게에서 일을 도와 드린 적이 있다.
나만 빼고 전부 중국 아저씨들인 가게에는 영어로 주문을 받는 일손이 부족했다.


늦은 시간 일이 끝나면 배달하는 아저씨들이 집에 데려다 주시곤 했다.
한번은 사이먼이란 아저씨가 집에 데려다 준 날이 있었다.
차안에는 만삭의 부인이 타고 있었다.
하루종인 배달하는 사이먼 아저씨 옆을 따라다니신 것이다.


사이먼 아저씨 부부는 결혼을 하자마자 부푼 꿈을 안고 캐나다에 무작정 오셨다.
지금은 전문 학교를 졸업을 앞두고 이민을 기다리시고 있는 중이다.
학교를 다니랴 가정을 꾸려 나가랴 사는 것이 빠듯하다고 했다.


그 와중 이 배달 일은 사이먼 아저씨께는 생계를 보장해 주는 일이었다.
아저씨는 시간당 최소 인금을 받는다.
그리고 배달에서 받는 팁은 전액 받는다.
계산을 해보면 한 시간에 약 평균 17불 정도 받는다고 한다.
이 정도면 보통 캐나다 고졸 학력이상이 받는 금액과 별반 차이가 없다.


나는 이 얘기를 듣고 예전에 인터넷이 올라온 한 이민자의 글이 생각이 났다.
무비자로 캐나다에서 일을 하는 한국 사람들을 비판하는 내용 이였다.
그 사람들 때문에 자신의 일자리가 없다는 얘기였는데 표현이 다소 과격했다.


물론 법을 어기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허나 써니 아저씨를 보며 무엇이 옳은 것인지 다시 한 번 질문 하게 된다.
어려운 동포를 챙기는 것이 옳은 것인가? 만일 사이먼 아저씨가 한국 사람들과 일했다면 저 정도 수당을 받고 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가끔은 써니 아저씨를 보며 “내가 과연 저렇게 할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 안은 얼마나 허영 덩어리들로 가득 찼었는가? 사회 풍습에 눈이 멀어 내가 만들어 놓은 직업에 대한 가치. 이 일은 좋은 일, 저 일은 별로인 일. 그 허영들을 바라보며 열심히 ㅤㅉㅗㅈ아 가고 있다.
마치 내 삶의 목적이 그 허영속에 있듯.

내가 만일 20년 동안 같은 곳에서 매일 음식을 만든다면 아저씨 같은 미소를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가 만일 써니 아저씨처럼 한 식당에 주인이었다면 어려운 위치에 처한 동포를 위해 내 이익을 포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아저씨를 만날 수 있었던 건 분명 큰 행운 이였다.
이를 통해 조금은 들여다 볼 수 있었던 중국 사람들의 모습도 큰 도전이 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밴쿠버 땅이 우리들에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시간이 흘러 내가 어느 자리에 있건 써니 아저씨같은 미소가 내 얼굴에 있을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김은총(UBC 한인학생회 부회장, xkorea8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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