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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영규 칼럼 [중고차와 원주민]

20여 년 전, 투자이민제도가 본격화되면서 이곳 캐나다에는 제법 많은 한인들이 이민을 왔다.
부모 나이 40~50대가 주류였고 이들은 한국에서 나름대로 중류생활을 하던 부류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지금과 달리 외화가 턱없이 모자라던 때라 해외로 출장을 가던, 이민을 가던, 일인당 외화지참 법정 한도액이 미화 100달러로 그 이상은 더 못 갖고 나가던 때였다.


1986년 드디어 새 이민법이 발효되면서 출처가 분명한 외화라면 이민자들 ‘이주 비’만큼은 합법적으로 가지고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로써, 당시로서는 거금(!)이라 할 수 있는 돈들을 들고 나온 이민자들은 현지에 도착하는 즉시 곧 바로 집과 자동차를 살 수가 있었다.
그것도 이곳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현찰 일시불’로…

그들 대부분은, 집은 되도록 저택으로, 차는 크고 호사스런(?) 새 차들을 선호했다.

집은 한국 식 투자개념이었고 차는 그래야만 체면이 선다는 우리 식 사고방식에서였다.


처음 와서 마땅한 일들 없고 이곳 생활 생소한 이들은 돈들은 있겠다 단체 여행, 골프 등을 끼리끼리 즐겼고, 하루가 멀다 하게 집집마다 돌아가며 초대’파티’를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 발생적으로 무슨무슨 ‘회’니, 출신 학교별 ‘동창회’들이 그리 번성 했다.


(그 많던 ‘회’ 마다 회장이 생겨 그 당시 회장이던 사람은 지금도 회장으로 불린다)

이러다 보니 같은 한국 사람끼리도, 일찍이 달랑 돈 100 달러씩 들고 와 갖은 고생을 하며 살고 있던 기왕의 이민자들과 새로 온 이민자들 간에는 보이지 않는 위화감이 생겼다.


그래서 먼저 온 사람들은 <원주민> , 나중 온 사람들은 <돈 많은 피난민> 이란 비아냥 조, 유행어가 생겼고 서로가 못 마땅한 눈길을 주고 받기가 일쑤였다.


차를 살 때도 그랬다.
대부분의 <원주민> 들은 현지 캐나다인들 모양 실용적인 중고차나 소형차들을 선호 했고, <돈 많은 피난민> 새내기들은 크고 비싼 럭서리(?)차들을 선호 했다.


얼마 전, 이곳에 나 보다 20여 년 전 유학 왔다 주저앉은 <원주민> 대학동창 하나와 점심을 같이했다.
그는 식당에서 나를 보자 마자 10년 만에 차를 새로 바꿨노라 자랑을 했다.


그는 이곳서 제법 성공한 사람 중 하나로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사업 또한 번창 일로다.


그래서 나는 기대(?)를 했다.

그런데,.....식사 후, 정작 주차장에서 본, 그의 새 차(!)는 소형 중고차였다.


나는 이곳서 기술자로 일하며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는 30대 중반의 막내 아들이 있다.


지난주 오랜만에 그 녀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차를 새로 바꿨다는 것이다.
몇 년 지난 소형 중고차인데 새 차 값의 반값으로 샀다며 그렇게 즐거워할 수가 없었다.
녀석, 한술 더 떠 “기름값도 치 솟는데 뭔 크고 럭서리한 새 차가 필요한가? 어차피 차는 새 차도 타는 날로부터 중고다”라는 것이었다.
한편 기특하기도 했고 한편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순간, 나는 한 동안 잊고 살던 <원주민> 단어가 얼핏 떠 올라 실소가 나왔다.
전화를 끊고,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혼자 말로 중얼거렸다.
”녀석, <원주민> 아니랄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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