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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린의 음악수첩] 피아니스트 VS 피아니스트

에마누엘 액스의 독주회를 계기로 다시 생각해 본다.



피아노를 잘 친다는 건 무슨 뜻 일까. 아직 배우는 과정에 있을 때는 말 그대로 베토벤이나 쇼팽, 리스트, 슈만 곡 들을 ‘틀리지 않게 잘 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세계 무대에서 독주나 협연을 하는 전문 피아니스트라면, 단순히 손가락을 움직여 박자에 맞게 건반을 누를 수 있다는 걸로 충분하지 않다.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를 계기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를 생각해 보자. 그는 감성적 연주 스타일의 대가로서, 기교보다 음에 내재된 풍부한 내용(quality)을 중시했다.


특히 만년에 이르면 더 이상 손가락이 따라주지 않아서 음을 잘못 치는 경우도 많았고, 심지어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중 어느 부분은 “모차르트의 실수가 분명하다” 며 언제나 자기 나름대로 바꾸어 연주해서 오케스트라를 당황하게 했다.


베토벤을 새롭게 인식시킨 사람으로서 피아니스트 슈나벨(Artur Schnabel)을 꼽는다.
그는 1927년 베토벤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여 음악 역사상 처음으로 7번의 릴레이 일요 음악회를 열었다.
이를 계기로 이른바 에베레스트 등정에 비유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32곡 연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아직도 ‘슈나벨이 곧 베토벤’이라 불려진다.
그는 베토벤의 악보를 편집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운지법, 페달링, 자신만의 프레이징 등을 거리낌 없이 적어 넣은 슈나벨 판본을 내기도 했다.


당시 그는 “쇼팽의 연습곡은 아름답고 완벽하지만 이것에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모차르트는 칠 음이 별로 많지 않아서 성인들은 기피하고 주로 아이들이 치지만, 아직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아서 더 공을 들이고 … 리스트나 슈만은 효과에 비해 ‘쳐야 할 음이 너무 많아서(too many notes to me!)’ 연주하고 싶지 않아요.” 라며 자신의 음악관을 밝힌 바 있다.


기교를 중시하는 냉혈적 고전주의 시각에서 틀리게 친 음만으로 피아니스트를 판정한다면 이들 연주의 깊은 맛을 결코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지난 2월 19일 저녁 8시 챈 센터에서, 피아니스트 에마누엘 액스(Emanuel Ax) 독주회가 열렸다.
베토벤의 소나타 2번(Sonata in A major, Op.2-2)과 23번(Sonata in F minor, Op.57) ‘열정(Appassionata)’ 그리고 슈만의 유머레스크(Humoreske, Op.20)와 파피용(Papillons, Op.2)이 연주되었다.


이 날 독주회에서 액스는, 슈만의 유머레스크 2악장 도입부에서 심각히 잘못된 건반을 눌렀다.
그리고 이후 평정과 자신감을 잃어버려, 베토벤 곡 중에서 가장 기교를 요구하는 ‘열정’을 거의 기진맥진 간신히 마감했다.
영역은 다르지만 ‘바이올린의 절대 강자이며 비르투오조의 대가’ 야사 하이페츠(Jascha Heifetz) 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액스의 연주가 호소력을 갖지 못한 이유는, 호로비츠나 슈나벨과는 달리, 비단 잘못 누른 건반의 문제가 아니라 음악적 내용을 담아 내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음악회 중간에 아무리 딴 생각을 한다고 해도 집에서 끓이던 된장찌개를 떠올리거나 깜빡 잊고 LP 플레이어를 끄지 않아서 계속 돌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이번 연주회 내내 불안 불안한 마음에 도저히 음악에 몰입할 수가 없었다.


액스는 폴란드 태생으로 어린 나이에 캐나다 위니펙으로 이주했으며, 줄리어드에서 공부한 이래 뉴욕에 산다.
1974년 25세 때,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국제 피아노 경연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다.
그 동안 하이든 소나타와 베토벤 전곡(구 RCA), 슈만의 피아노 독주 음반을 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중 어느 것도 ‘역사적인 음반’ 대열에 들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활동은 첼리스트 요요 마, 다른 피아니스트 에핌 브론프만, 그리고 일본인 아내 요코 노자키와 함께 한 협연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CBC FM 의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음악 해설가 또는 교육자로서 보다 알려졌으며, 브람스 피아노 사중주 등 실내악 연주 분야에서는 큰 빛을 발했다.


다 같이 피아노를 공부해도 독주자로서 협연자로서 또는 교육자로서 적합한 영역이 있다.
플레티뇨프나 바렌보임처럼 유명 피아니스트에서 지휘자로 변신하는 경우도 아주 많다.
그리고 지휘자의 리허설 장면을 보면 '자 이렇게 연주하라구" 노래를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깜짝 놀랄 정도로 음정을 맞추지 못한다.
김응룡 감독한테 지금 야구 공 던져 보라고 하면 안 되듯이 사람마다 자기에게 맞는 그릇이 있다.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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