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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사로잡는 아리아 한 곡

[밴쿠버 중앙일보] 기사입력 2008/04/03 11:12

[최예린의 음악수첩]

사진=2004년 할레 오페라에서 선보인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한 장면.


사랑 때문에 죽을 수 있을까. 희극 오페라[코지 판 투테] (여자는 다 그래)를 보면, 하녀 데스피나가 약혼자를 군대 보내고 세상이 끝난 듯 서러워하는 주인 아가씨들에게 “사랑 때문에 죽은 여자는 세상에 없답니다”하고 말한다.


모차르트는 상당히 이성적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19세기 낭만주의 오페라에 이르면, 마치 유행처럼 너도나도 사랑 때문에 죽는다.
길고 멋진 아리아를 부르면서 프리마 돈나가 죽어야 비로소 비극 오페라가 막을 내리는 것이다.


바그너의 오페라(자신은 ‘음악 극’이라고 불렀다.
)는 좀 다르다.
그는 인간의 목소리도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하나의 악기로 보았기 때문에, [라 보엠]에 나오는 ‘그대의 찬 손’이나 [토스카]에 나오는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같은 유명 아리아를 따로 돋보이게 작곡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에도 예외가 있으니, 바로 [트리스탄과 이졸데] 3막 끝부분에 나오는 아리아 ‘부드럽고 엷은 미소(Mild und leise)’다.
“아세요? 부드럽고 조용하게 그가 미소를 짓습니다.
보이지 않나요? 그의 입술에서는 달콤한 숨결이 느껴집니다.
..” 사랑의 열병을 앓다가 이졸데가 도착하기 직전 숨을 거둔 트리스탄을 안고 이졸데가 부르는 이 노래는, 매우 느리고 장중하게 시작되어 서서히 클라이맥스를 향해 올라가다가 마침내 화산처럼 폭발한다.


사랑 때문이 아니라 ‘사랑을 위하여’ 죽는 장면으로서 압도적이고 장중하며 매우 정화된 사랑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의 용어를 빌자면, 생의 본능인 에로스(Eros)와 죽음의 본능인 타나토스(Thanatos)의 완전한 만남이다.


지난 3월22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무대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인공위성을 타고 전세계 영화관에 쏘아졌다.
누가 이 길고 지루한 오페라를 볼 것인가 하는 염려는 이제 그만 접어둬야겠다.
왜냐하면 공연 시작 1시간 전부터 거의 100여 명의 관람객들이 좋은 자리를 잡으려고 장사진을 치는 진풍경이 연출됐기 때문이다.
다운타운의 스코티아 뱅크 극장은 급기야 상영관을 하나 더 늘려 제1관과 제4관을 동시 오픈했다.


우리는 왜 오페라를 보는 것일까. 멋진 노래를 듣기 위해서? 그렇다면 가곡집이나 아리아 혹은 듀엣 모음집만 골라 들으면 된다.
‘대부분 뻔한 이야기’인 오페라를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거듭 보는 이유는 줄거리를 알기 위해서도 아니다.


오페라 보는 재미는, 마치 가상 체험처럼 현실에서는 도저히 겪을 수 없는, 꺼내 놓을 수 없는 다양한 심리를 음악을 통해 분출시키는 데 있다.
산을 올라가야 정상에 다다를 수 있는 것처럼, 오페라 한 편을 다 보아야 비로소 완전한 카타르시스에 이르게 된다.


특히 바그너의 오페라를 보자면 전문 산악인처럼 결연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지도 모르겠다.
웬만한 오페라 애호가도 선뜻 다가서기 어려운 이유를 몇 개 들어보자.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으뜸음으로 돌아오지 않는 불협화음과 끝없이 이어지는 무한선율, 정적인 무대, 우람한 체구의 가수들, 무엇보다 엄청 긴 연주 시간 등이 장애가 되겠다.


아울러 오페라 역사에서 처음으로 문학의 우위를 증명했던 것처럼, 대사가 심각하고 철학적이어서 랄랄라 노래 부르는 경쾌함과는 아예 거리가 멀다.


주제도 무겁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은 빛의 세계에서 보자면 불륜이요, 어둠의 세계에서 보면 타오르는 정염의 열락이요, 쇼펜하우어 적인 죽음의 예찬이다.
실제 바그너는 당시 아내 민나에게서 벗어나 후원자의 부인인 베젠동크 부인, 마틸데와 깊은 사랑에 빠져 있었다.


이런 사랑의 감정이 투영돼 보다 유려한 음악을 쓰고 동시에 자신의 꿈이 가상 현실 속에서 구현되는 기쁨을 얻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바그너는 작곡하기 10년 전부터 켈트 족의 전설인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음악극으로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바그너 인생에서 마틸데가 첫 여인도 마지막 여인도 아니었으며, 유부녀와의 사랑 역시 처음이 아니었다.
이러한 가십을 한 방에 날려버릴 정도로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강력하고 질서 정연한 음악 구조를 가졌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오로지 바그너 오페라만 공연하는 극장이 독일 바이로이트에 있다.
이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의 공연은 앞으로 3,4년까지 모두 예매가 끝난 상태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바그너 자신은 이 오페라를 처음 상연할 때 관객 전원 무료입장(!)을 주장했었다.
아무리 공짜로 보여준다고 해도 5시간 앉아 있기는 힘들다는 걸 스스로 인정한 걸까? 지금 현실은 아이러니 하게도 암표 상이 극성을 부릴 정도로 '뜨거운 바그네리안'이 많아졌다.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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