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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에 대한 개념 바꾼다

[밴쿠버 중앙일보] 기사입력 2008/04/10 08:40

“덴티스트? 아티스트? 또 하나의 가능성에 도전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개념 바꾸는 데이비드 강
자의 반 타의반으로 치과의 됐다가 뒤늦게 미술 전공, 교수까지

데이비드 강(사진 아래)은 현재 덴티스트와 아티스트로서 두 가지 일을 병행하며 산다.
그의 가계도를 그리면, 한국 기독교 사회운동의 거물인 고 문익환 목사를 비롯하여 문화예술인들의 이름이 줄줄이 등장한다.


이러한 가족적 영향력과 예술가적인 '끼'는 인 앤 아웃을 넘나들며 그의 핏줄을 타고 흐른다.
열 살 남짓 어린 나이에 캐나다로 이주한 제3세계 출신의 의식 있는 동양인, 남성으로 사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남 앞에 나서기 꺼리는 그가, 오늘 우리들의 2세를 위해 대화의 장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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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관계를 샅샅이 밝히자는 건 아닙니다만, 강 선생님의 이력을 살펴보니 가족사에서 비롯된 영향력을 간과할 수 없네요. 외삼촌 문익환 목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촌 형(문성근, 배우)은 아들의 입장에서 '박정희 대통령 시절 우리 사회에 요구됐던 민주화 운동만 없었더라면, 영원한 보헤미안으로 살 사람'이었다고 해요. 제가 보기에는 원리원칙 분명하면서도 인간적인 따스함이 넘치는,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분이었죠. 저의 정체성은 외가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어요."

-외가와 가깝다는 건 어머니와 깊은 심리적 유대감이 있다는 건데, 어떤 분이셨나요?

"어머니는 한국기독교협회 편집인이었어요. 2001년에 돌아가셨는데… 자애롭고 부드러운 분이죠. 좋은 기억이 많아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벽에 낙서도 많이 했는데, 한번도 야단 치지 않고 온통 하얀 종이를 벽에 붙여주시곤, 마음대로 그리라고 했어요. 아무래도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창조적인 소양이 있었고, 또 교육적인 배려로 그러셨겠죠."

-심리학 학사에 치과 전문의, 그리고 다시 신학을 공부하다가… 뒤늦게 미술을 시작해서 지금 BC 최고의 예술대학, 에밀리 카 인스티튜트 교수까지 되셨는데요. 그 배경을 설명해 주시겠어요?

"이민자의 현실이라는 게 있잖아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치과 의사가 되었지요. 3년 정도 일하다 보니 어째 장사 같아서 회의가 들더군요. 그래서 1년 동안 남태평양의 솔로몬 섬으로 의료봉사를 떠났어요.

무료 이동 치과병원 같은 거였죠. 지금은 종교적인 질문이 많이 줄었지만, 이후 신학을 공부하게 된 겁니다.
나이 20대에 'Mid-life Crisis'가 있었다고 봐요. 그러다가 뒤늦게 어려서부터 그토록 하고 싶었던 미술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건축학은 예술과 과학기술이 맞닿는 분야라서, 마지막 결정을 내릴 때까지도 미술대학과 건축학과에 함께 지원서를 낼 정도였어요. 인권문제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지금 하는 예술 작업보다 법을 전공하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여전히 생각이 많아요. 이러한 저의 고민 과정이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이 자리까지 나온 거지요?!!"

-치과에서 무슨 일 하냐고 묻는 사람은 없겠지요? 그럼 에밀리 카에서는 무엇을 가르칩니까?

"실기 과목을 주로 가르쳐요. 조각 퍼포먼스 드로잉 설치미술 등이죠. 조금 생소하겠지만, Studio Practice는 예술 이론에 가깝습니다.
어느 과목을 가르치든 사회와 예술을 대하는 ‘중용’의 태도, 열린 마음, 그리고 올바른 비평적 시각을 가지라고 강조합니다.
요즘은 대학도 점점 교수 정년보장제가 없어지면서 스타벅스 같이 기업적 운영시스템으로 바뀌고 있어요. 배 고픈 순수예술 지향적 세계가 아니라는 현실도 얘기하지요."

-그렇지만 강 선생님은 '두 마리의 토끼'를 잡고 계시잖아요?

"경제적인 보장 없어도 인생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대신 자유가 주어지잖아요? Voluntary Simplicity Movement를 생각해 보세요. 물질적인 것을 완전히 버리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에 이르면 스스로 욕망을 자제하고 가진 것을 줄이려는 노력도 필요해요. 요즘처럼 한국에서 투자이민 올 정도가 되면, 자녀들에게 더 이상 생계가 보장된 직업만 가지라고 강요해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단순하게 살자’(Simple Living or Voluntary Simplicity Movement)는 운동은 시애틀 등 북미 서부 지역에서 시작됐다.
현대 사회의 부와 소비 지향적 세계관, 즉 ‘더 많이 가지는 게 미덕’(more-is-better)이라는 생각에 제동을 건 실천 운동이다.
철저한 금욕주의(asceticism)와 달리, 스스로 욕망을 자제하고 가진 것을 줄임으로써(downshifting) 자신은 물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다른 사회구성원들과 화해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사가 된 데 어떤 압력이 작용했나요?

"특히 한국사회에서...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라는 게 좀 어렵죠. Yes와 No가 같이 들어 있어요. 아버지는 제가 어려서부터 '찬찬하고 손재주가 있으니까 치과 의사가 되면 좋겠다'고 은근한 회유를 하셨죠. 저 역시 이상만 추구하다가 영원한 아웃사이더가 될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어요."

-원한다고 다 될 수 있다면, 당신은 철인인가요?

"하하, 철인(Ironman)이 아니라 양철로 만들어진 사나이(Tinman)죠. 1991년엔가, 아버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철인경기에 출전한다는 핑계를 대고 밴쿠버로 도망쳤죠. 펜틱턴에서 매해 열리는 유명한 철인경기(Iron Man Competition)가 있어요.

이 경기는 수영 4Km, 자전거 180Km, 그리고 마라톤 세 시간 거리를 연속으로 해서 하루 24시간 안에 들어와야 하는 경기예요. 해마다 2천 명 정도 출전해요. 물론 기록을 재니까 세계적인 선수들이 매해 신기록을 세우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보통 사람들도 심리적인 결단을 통해 체력의 한계를 극복(issue of mind over matter/body)할 수 있어요.”

-이런 다양한 인생 경험을 통해, 우리 부모와 자녀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나요?

"C3 한인의 날 행사 때 오전에는 치과의사로서, 오후에는 아티스트로서 젊은이들을 상담한 적이 있어요. 두 그룹 모두 상당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더군요. 자녀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후원해주는 게 부모의 도리라고 생각해요. 이제는 한국의 경제적 위상도 많이 부상했기 때문에 한국 예술에도 많은 특권이 부여됩니다.
자녀가 무엇을 원하든 ‘기를 살려주는 일’이 중요해요.”

-이제 선생님의 예술관에 대해 설명해 주시죠. 자신의 몸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선생님의 작품활동은 충격적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백남준씨를 계기로 행위예술에 대해 상당한 이해 기반을 갖게 되었지만, 막상 작품을 대하면 저 역시 쇼크를 받아요.

"서양예술에서 '미'라는 말은 없습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고착화 된 이미지'가 없다는 뜻이죠. 저는 (스스로 말하기 어색하지만) 더 이상 신인작가가 아니라서 충격요법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바로크 미술도, 인상주의 화법을 선보인 모네도 처음에는 모두 '사회적 이단자'들이었습니다.
저의 예술 작업은 오브젝트보다 아이디어와 개념을 더 중시합니다.


새로운 개념에 자극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든 시도합니다.
백남준씨는 세계 최초로 비디오 예술 장르를 개척한 사람이지요. 우리는 흔히 서양교육제도가 우월하다고 믿지만, 북미에서 교육 받은 저는 백남준의 방법론에 대해 배운 적이 없습니다.
특히 현대는 postmodern culture이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을 받습니다.


오직 한 분야에서 ‘스승-제자 관계’를 말할 수 없어요. 제 경우에는, 이민자의 정체성에 대해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한 이상철 목사의 자서전 [나그네]라든가, Stephen Lewis (former Canadian Ambassador to the United Nations) .... 사회활동가, 현명한 교육자 등이 작품활동의 모델이 됩니다.
"

-오는 5월 16일부터 24일까지 Centre A (Centre for Contemporary Asian Art, 2 E. Hastings St.)에서 열릴 새 작업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어요?

"준비가 안 된 분들의 거부반응이 심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예술 감상에도 일정 수준의 감상 교육, 사전 이해가 필요하거든요. 예술 언어라는 게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말과는 당연히 다르니까요. 작업을 통해 알리고 싶은 개념을 먼저 퍼포먼스로 선보이고 이것을 비디오를 이용해서 행사 기간 중에 설치, 전시합니다.
Avant-garde라고 할 수 있는데, 현실을 보는 눈을 '일종의 자극'과 함께 제시하는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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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강'은= 현재Emily Carr Institute의 아트 교수이면서 동시에 치과의사로서 활동하고 있다.
1974년, 열 살 때 토론토로 이민했다.
토론토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BSc, Psychology)한 뒤, 다시 치과의 과정(DDS : Doctor of Dental Surgery, University of Toronto)을 밟았다.


1991년 밴쿠버로 이주했다.
이후 3년여 동안 치과의사로서 전념하다가 남태평양에 있는 솔로몬 섬으로 1년 동안 의료봉사활동(with Canadian International Development Agency) 을 떠났다.


캐나다로 돌아온 후 신학 공부(Master of Divinity Program at the Vancouver School of Theology)를 했으나 중도에 포기하고, 1997년 마침내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던 미술 공부를 시작(Bachelor of Fine Arts at Emily Carr Institute)하게 된다.


이후 뉴욕에 있는 쿠퍼 유니언(School of Art & Architecture)을 거쳐, 한국의 홍익대(Department of Asian Art)에서 서예를 공부하기도 했다.
2000년 에밀리 카(BFA Emily Carr Institute)를 마치고, 미국 캘리포니아로 옮겨가 UC Irvine MFA (Emphasis in Critical Theory) 를 취득했다.


다시 밴쿠버로 돌아와 2005년 이래 현재까지 에밀리 카 교수로 재직하면서Canada Council for the Arts and BC Arts Council의 지원 아래 활발한 창작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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