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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오 기자의 [모던 클래식 읽기]

'길 위에서'

길 위에서((On the Road, 잭 케러액(Jack Kerouac) 지음, 펭귄 출판사(Penguin), 2백80쪽)


세상과 소통에 실패한 젊은 인간 군상 그려

밴쿠버 중앙일보는 오늘부터 매주 화요일 ‘김종오 기자의 모던 클래식 읽기’를 연재합니다.




주로 20세기에 발표돼 시기적으로 ‘현대성’을 띠고 세계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지만 여러 사정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클래식’을 소개하게 됩니다.
이번 ‘모던 클래식 읽기’를 통해 영. 미. 캐나다의 문학작품은 물론 논픽션도 기회가 닿는 대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바랍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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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불편하다.
끊임없이 요구만하고 주는 것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세상이 요구하는 도덕적, 윤리적, 사회적 책임은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세상과의 소통은 만만치 않다.
기존의 질서는 나를 억압하기만 한다.
세상과의 불화는 어쩔 수 없는 것 인가. 세상에 타협할 것인가? 아니면 길을 떠날 것인가?

잭 케러액의 ‘길 위에서(On The Road)’는 바로 세상과 타협하지 못하고 ‘길’위에서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그린 50년대 미국 문학의 대표작이다.
‘길 위에서’는 윌리암 버로우스의 ‘네이키드 런치(Naked Lunch)’와 알렌 긴즈버그의 시 ‘아우성(Howl)’과 함께 ‘비트세대(Beat Generation)’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기성 세대에 반발해 일상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젊은이를 대표한 문학문예운동 흐름인‘비트세대’의 정신이 이후 히피세대에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케러액은‘비트(Beat)’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작가이다.


‘길 위에서’는 케러액이 3년간의 여행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3주 만에 일사천리로 쓴 자전적 소설이다.
당시 한 비평가는 ‘작품은 3주간 여행을 하고 3년 동안 써야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지만 케러액은 타이프 종이를 갈아 끼우면서 글 쓰는 작업이 중단되는 것 조차도 몹시 싫어해 여러 장의 타이프 종이를 두루마리처럼 연결해 작품을 써 내려갔다.


창작과정은 그야 말로 ‘자연발생적(spontaneous)’으로 이뤄진 것이다.


단숨에 작품을 써야 하는 그 절박감은 무엇인가? 세상은 답답하지만 억압적이다.
한 틈이라도 방심을 하면 그 세상은 빈 틈을 뚫고 여지없이 나를 간섭한다.


대학생이며 작가 지망생으로 뉴욕에 살고 있는 나(살 패러다이스, Sal Paradise)는 어느 날 친구 차드 킹(Chad King)로부터 부랑자 딘 모리아티(Dean Moriarty)의 이야기를 듣는다.


차드의 친구인 딘은 소년원에서 차드에게 편지를 보내 글 쓰는 법과 니체에 대해 알고 싶다며 뉴욕을 방문한다고 말한다.
마침 부인과 이혼한 직후 어디론가 떠나기를 원하던 나에게 딘은 커다란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


딘은 역시 사회의 패배자를 아버지로 두고 있고 바로 ‘길’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어려서부터 소년원을 드나들던 딘은 청년이 되고 나서도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인물이다.
여자, 술, 재즈(비밥. bebop)만이 그의 관심을 끌 뿐이다.


딘과 잠시 조우한 뒤 헤어진 나는 드디어 딘을 찾아 오랜 꿈인 서부로의 여행을 단행하게 된다.
이후의 작품은 중심 풀롯이 없이 서부와 동부를 여행하는 살과 딘, 그리고 여행도중 만나는 수 많은 낙오자들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가 이 길 위에 떠 있는 낙오자들에게 어떤 애정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작가는 세상과 함께 어울리지 않는 이 낙오자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주인공인 딘이 무슨 엄청난 고뇌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여전히 여자를 좋아하고, 동부와 서부에서 아내를 두고, 술과 음악을 좋아한다.


여행 도중 만나는 과거의 친구들은 아내를 갖고, 아이를, 집을 갖고 세상과 타협하고 있으나 딘은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방황하는 것이다.


인류 문명이 시작된 이래‘길’은 바로 세계와 소통하는 수단이 돼 왔다.
그러나 인간이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길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길이 목적지를 연결해 주지 않는다면 길로서의 역할은 사라지는 것이다.
길이 그 자체로 존재 의의를 갖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길 위에서(on the road)’에서 영원히 살 수 없으며 그 길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 조차 세상에 들어가려는 마지막 순간에도 딘은 여전히 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선택의 여유가 많은 것 같지는 않다.
길에서 벗어 나든가, 여전히 길 위에 머무는 것이다.
길이 없는 곳(off the road)으로 가든가. 아니면 전복 하든가.

비트의 후예들은 대부분 길에서 벗어 났다.
히피들도 이젠 늙었다.
기성 세대는 희미한 옛 사랑의 상처를 마음에 가둔 채 이젠 가정의 평화와 나라의 평화를 바랄 뿐이다.
결국은 다 그랬다.
전복은 불가능해 보인다.
(유나바머는 정신적인 기형아였을 뿐이다.
)

양차 대전은 인간성과 인간이 만든 제도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가져온 결정적인 계기가 됐었다.
비트세대의 출현은 당연한 시대적인 소산이었다.
비트세대가 의미를 갖는 것은 근본적으로 인간성을 추구하는데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변치 않는 진실은 나를 규정하는 것은 바로 세상이라는 것이다.
길이 없는 곳으로 탈출하는 것은 도피이며 길 위에 머무는 것도 패배이다.
로빈슨 크루소는 결국 되돌아 왔고 쏘로우도 아주 벗어날 수는 없었다.


많은 로드 무비가 그러하듯이 또 많은 로드 노블(road novel)들도 유쾌하지 않다.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인간들은 애처롭기만 하다.
소설 ‘길 위에서’ 역시 우울하고 어둡다.


김종오 기자


◆잭 케로액=1922년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는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젊었을 때 각각 미국으로 이주해 미국에서 만나 결혼을 했다.


컬럼비아 대학에 입학했으나 중퇴했다.
알렌 긴즈버그, 윌리암 버로즈와 함께 비트문학의 선구자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3인은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비트 정신을 구현하는 데 앞장섰다.


‘타운과 시티(The Town and the City)’라는 작품을 최초로 공식발표 했으나 역시 ‘길 위에서’가 대표작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소설‘땅 밑(The Subterraneans)’,’다마 범즈(The Dharma Bums)’ 등이 있으며 시집 ‘멕시코 시티 블루스(The Mexico City Blues)’ 1969년 47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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