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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오 기자의[모던 클래식 읽기]

벨 자(The Bell Jar)

탈출구 찾지 못하고 정신병 걸린 19세 여성 섬세하게 묘사

‘이상하고 푹푹 찌는 여름이었다.
그 여름에 그들은 로젠버그 부부를 전기의자에 앉혀 처형했다.
그리고 나는 뉴욕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이렇게 시작된 소설‘벨 자(The Bell Jar)’는 이후 세상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우울증에 시달리며 정신적인 침몰에 빠지는 19세 여대생 에스터 그린우드(Esther Greenwood)를 그리고 있다.




작가 실비아 플래스(Sylvia Plath)는 1963년 ‘빅토리아 루카스(Victoria Lucas)’라는 가명으로 이 작품을 발표한 뒤 한 달 뒤 31살의 나이로 자살했다.
‘벨 자’는 시인이기도 했던 실비아 플래스가 발표한 유일한 소설이었다.
독자들은 이 작품이 바로 작가 자신의 이야기라고 눈치 챘을 것이다.


실제로 작품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과 장소들이 작가가 실제로 경험한 인물, 장소들과 매우 흡사하다.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는 에스터 그린우드는 10대 여자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잡지인 ‘레이디스 데이’지에서 한 달간 인턴생활을 하기 전국에서 모인 12명의 젊은 여성들과 함께 뉴욕에 머물게 된다.


작가가 되겠다는 막연한 장래 계획만을 갖고 있는 에스터는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뉴욕을 찾은 상류층 출신의 여성, 시골 출신의 순진한 여성 등 다양한 부류의 젊은 여성들과 함께 인턴 생활을 시작하지만 세상에 굳건하게 발을 내리지 못하고 방황하게 된다.
장학금을 받는 영문학도이지만 세상이 요구하는 수단을 갖지 못한 채 세상에 편입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필요한 지식을 갖지 못하고 있는 에스터에게 잡지사의 편집장은 “수 많은 여자들이 편집자가 되기 위해 뉴욕으로 쏟아져 들어 온다”며 “평범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불어와 독어, 그 밖에 많은 언어를 알아야 한다”고 충고하기도 한다.
그러나 외국어를 배울 수 있는 마지막 학년 과정은 이제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뉴욕에서 돌아 온 뒤 유명한 작가로부터 창작을 배우려는 계획조차 실패한 에스터는 여름을 소설 쓰는데 노력을 바치기로 하지만 소설을 쓰기 위해 필요한 충분한 경험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좌절하게 된다.


학교를 졸업한 뒤 무엇이 될 지를 확신할 수 없는 에스터는 불면증에 시달리며 점점 우울증에 빠지고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한다.


에스터 에게 세상은 숨을 쉴 수 없는 진공 유리병(bell jar)에 갇힌 것과 같은 것이다.
다량의 수면제를 먹었으나 자살에 이르지 못하고 발견된 에스터는 장학금을 대주던 유명 작가의 도움으로 사설 정신병원에 수용되고 놀란 박사의 도움으로 서서히 회복하게 된다.


에스터가 우울증에 빠지는 이유가 반드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전망 부재에 있는 것만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여성과 성에 대한 에스터의 고민 또한 작품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남편을 만나 많은 아기를 낳고 평범하게 사는 것을 혐오하지만 성에 대한 호기심조차 억누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성은 에스터에게 불쾌감만 줄 뿐이다.
의대에 다니고 있는 고향 남자 친구 버디 윌라드가 한 웨이트리스와 관계를 맺은 것에 대해 몹시 분노하면서도 자신은 처음 만난 동시통역사 콘스탄틴과 기꺼이 관계를 맺으려고 한다.
에스터가 먼저 침대에 누었으나 콘스탄틴은 에스터를 건드리지도 않는다.


뉴욕을 떠나기 전 파티에서 만난 마르코는 폭력적으로 에스터를 범하려 한다.
젊은 수학교수에게 처녀성을 주었지만 바로 그날 응급실에 입원할 정도의 하혈을 흘린다.


로젠버그 부부가 공산주의자라는 혐의를 받고 전기의자에서 처형된 1953년은 매카시즘의 광풍이 미국을 휩쓸고 있던 시기였다.
정치적인 경쟁자나 관료, 주민들은 공산주의자로 내 몰릴까 봐 공포에 떨어야 했다.


에스터에게 세상은 억압으로 가득 차 있고 숨 쉴 수조차 없는 진공의 상태이다.
귀결은 불면증과 우울증, 자살시도와 정신병이었다.


에스터는 의대에 다니는 남자 친구 버디 윌라드가 실험실에서 유리병 속에 담아 둔 태아의 모습을 보여 주었을 때 침착함을 잃지 않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에스터는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의 태아의 발달 단계를 보면서 태아들이 자신을 향해 웃고 있다고 느낀다.


억압과 질식의 이 시대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는가? 진공 속의 벨 자 안에서 탈출구는 자살인가 미치는 것인가? 옆에서 ‘돌파하라’고 부추기는 것은 너무 단순한 것인가?

이 소설이 소설로만 읽히지 않는 것은 물론 작가 스스로도 목숨을 끊었다는 점이 계속 떠 올랐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책 커버의 실비아 플래스의 커다란 눈망울을 반복해 보았다.
버지니아 울프과 전혜린의 흑백 사진이 자꾸 겹쳐졌다.


캐나다의 한 일간지는 지난 2월 실비아 플래스의 사망 45주기를 맞아 특집 기사를 내보낸바 있다.
한국에서 최근 ‘벨 자’라는 원제로 번역판이 나온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벨자(bell jar)’는 진공 상태를 만들기 위해 공기를 빼내는 실험용 유리병으로 종(bell)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에스터가 정신병원에서 퇴원하기 위해서는 병원 의사들이 모인 방에서 의사들과 인터뷰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작품의 마지막 문장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나는 방안으로 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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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플래스는=1932년 10월 미국 매서추세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오스트리아 이민자였고 어머니는 폴란드 출신이었다.
스미스 컬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3학년 때 마드모아젤 잡지에서 인턴 기자로 활동했다.
‘벨 자’의 ‘레이디스 데이’지의 모델이다.
모교에서 영문학을 강의했으며 영국 시인 테드 휴즈와 결혼 했다.


‘벨자’를 발표하기에 앞서 시집 ‘콜로서스(The Colossus and Other Poems)를 발표했다.
소설가 이전에 시인으로 알려진 것이다.


1963년 2월 11일 자살했다.
자기 자신이 있는 곳과 아이들이 있는 방을 젖은 수건과 옷가지로 막은 뒤가스가 켜져 있는 오븐에 머리를 넣어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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