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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에서 즐긴 가족 휴가

3층 아파트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는 아침 바다는 유난히 고요하고 푸르다.
아파트 앞에 군데군데 서 있는 야자수의 길고 넓은 잎새들이 바람에 휘날리면서 아열대의 정취를 돋우고 있다.
부드럽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살갗을 스쳐가는 쾌적함이 마음 깊숙한 곳까지 흠뻑 적셔준다.


쉴 새 없이 밀려드는 파도가 거무스름한 바윗돌에 부딪쳐 하얗게 산산이 부서지면서 철석이고 있고, 바닷게들이 파도를 피하는 듯 바위 위에 앉아 늦겨울의 따스한 햇살을 쪼이고 있다.




한 쌍의 이름 모를 큰 새가 수면 위를 고무풍선처럼 미끄러지듯 날아가면서 물밑의 고기를 찾고 있다가 때때론 물속으로 곤두박질을 쳐 먹이를 물고 올라온다.
바다 주변에 우거진 울창한 숲 속의 큰 나무들 위로 행복의 상징이라고도 하는 파랑새들이 떼를 지어 분주히 날아다니면서 지저귀고 있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더 이상 바랄 바가 없으니 이것이 바로 지상의 낙원이 구나 하는 황홀경에 빠져 넋을 잃고 있는데, 딸애의 커피를 하겠느냐고 묻는 말에 문득 정신을 가다듬게 된다.


호주에 사는 우리 부부가 캐나다에서 사는 아들과 딸의 주선으로 그들 가족과 함께 멕시코 중서부 태평양 해변의 관광지인 푸에르토 발라타에 와서 휴가를 즐기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비록 수 만리 머나먼 타국에 흩어져 아들과 딸이 살지만 이제는 세상이 좋아져서 매일같이 이메일로 서로의 근황을 묻고 그것도 흡족하지 않아 3일이 멀다 하고 전화하여 안부를 확인하고 있으니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일 년에 한 두 번은 서로 짬을 내어 캐나다와 호주에서 만나는 기쁨을 누려왔는데 이번에는 가족 휴가를 기후가 좋은 멕시코의 이 휴양지에서 갖고 있으니 즐거운 마음이 넘쳐서 모든 것이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지도 모를 일이다.


더욱이 멕시코는 초행이라서 모든 것이 신기하다.
인구는 대략 한국의 두 배가 되는데 개인당 국민소득은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멕시코도 한국과 같이 OECD 회원국이며 1994년에는 외환위기도 겪었다.


우리가 머무는 푸에르토 발라타는 관광도시라서 상대적으로 잘 살지 않을까 생각이 되는데도 가난한 티를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택시에 미터가 없어 탈 때마다 흥정을 하니 무척 짜증스럽다.
시내버스 좌석에는 쿠션과 커버는 다 헤져 떨어져버리고 쇠로 된 받침만 남아있으니 60-70년대 한국을 연상시킨다.


멕시코는 여러 가지의 지하자원을 많이 생산하고 석유 생산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고 네 번째 큰 석유수출국이다.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관광객이 많은 국가로 일 년에 약 2천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개방경제라서 40여 개 국가와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있으며, 1994년부터는 미국 캐나다와 북미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여 그 후 수출은 4배, 외국 투자는 14배 증가하였는데, 수출의 90%가 이들 두 나라로 가고 있다.


이렇게 지하자원도 많고, 세계에서 각각 첫 번째와 아홉 번째로 큰 미국과 캐나다경제를 이웃 자유무역국으로 하고 있는 멕시코가 왜 이렇게 가난할까 하는 질문이 이 서툰 경제학도의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문헌과 자료를 보고 연구를 하지 않았기에 구체적인 것은 모르지만, 쉽게 관찰할 수 있는 것이 역사적으로 오랜 식민지 지배를 받고, 저명한 사회학자 맥스 베저가 주장한대로, 국민 대부분이 믿는 종교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개개인이 자기를 개발하려는 의지가 낮고 세계화가 미진한 것 같다.


미국과 접해있고, 미국에 밀입국하려는 멕시코 젊은이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미디어를 통하여 보고 들어 왔기에 멕시코 사람들은 영어를 잘 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그들과 영어로 대화를 시도하여 보고는 영어를 전혀 못하는 젊은이들이 의외로 많은 것에 놀랐다.


문맹률이 아직도 9%나 된다니 교육 수준이 낮다는 것을 말해준다.
음식 탓인지 모르지만 국민들 중에 비만한 사람이 무척 많은데도 불구하고 길거리에서 조깅 하는 사람들을 볼 수가 없다.


어느 나라를 가나 경제적인 측면을 살피는 경제학도의 이 고약한 버릇 때문에 안타까운 빈곤의 측면도 보이지만, 툭 튄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는 푸에트로 발라타 포구는 정말 아름답다.
이 호화로운 관광 명소에서 모처럼 떨어져 살고 있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세상만사 다 잊어버리고 즐겁게 쉬고 있다.


낮에는 고급 호텔이 즐비하게 늘어선 바닷가를 종심을 지난 내가 젊은 아들딸과 함께 조깅하면서 비할 데 없는 희열을 느낀다.
저녁 무렵에는 윗몸을 올려주는 길쭉한 의자에 온 가족이 비스듬히 누어 호수같이 잔잔한 바다 수평선으로 서서히 떨어지는 낙조의 아름다움에 마을을 잃고 있다.


눈이 부시어 얼굴을 돌려 피하던 해가 새빨간 동그라미로 되면서 낙조의 길쭉한 황금빛 그림자를 바다 위로 띄운다.
그 위로 조그마한 배의 실루엣이 지나가니 진정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다.
이 아름다움을 오래 간직하고 싶은 욕심에 연신 디지털 카메라 슈트를 누른다.


아쉽게도 낙조의 아름다움은 너무나 짧다.
새빨간 해는 황금빛 저녁노을을 남기고 저 멀리 수평선 끝으로 넘어 간다.
펼쳐진 바다는 황금빛 노을에 자리를 비켜주듯이 빛을 잃고 어두움 속으로 스며든다.
저녁노을에 걸쳐진 기다란 구름조각들이 점점 검어지면서 석양은 더 산뜻한 황금빛으로 물들어간다.
마침내 새빨간 한줄기 선으로 변한 석양이 저녁의 어둠에 스며져 버리면서 아쉬운 여운을 가져다 준다.
어둠이 짙어지니 별들이 하나 둘 나타나면서 밤이 왔음을 알린다.


낙조의 아름다움에 현혹되어 있던 가족들이 아쉬운 양 정말 아름답구나 하는 감탄사를 나름대로 표시하면서 모래를 털면서 일어난다.
관광명소의 아름다움과 며칠 동안 같이 있으면서 느꼈던 흐뭇한 가족의 정감을 다시 갖고 싶은 마음에서, 매년 겨울에 가족이 휴양지에서 만나는 것을 가정의 전통으로 하자하고 다짐한다.
가족들이 함께하는 휴가는 이렇게 가족들 간의 정을 키우고 오래오래 간직할 수 있게 하는 좋은 행사라고 모두들 공감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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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율박사는...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졸업(1962),
▶캐나다 McMaster 대학교 경제학 석사(1968), 경제학 박사(1972)
▶호주 국립 그리피스 (Griffith) 대학교 석좌교수, 한국학연구소 소장
▶캐나다 리자이나 (Regina) 대학교 명예교수,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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