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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바꿀 수 없는 혀

조소현/제1회 텍사스 한인예술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자

내가 ‘국민’ 학교를 다닐 때에는 중학교때부터 영어를 배웠는데 나는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영어 과외 수업을 받았다. 자식 교육이라면 눈에 불을 켰던 엄마 덕분에 열 살에 영어의 세계에 입문한 것이다. 선생님에게서 ‘발음이 좋다’는 말을 들었고, 그 말은 ‘너는 영어를 모국어처럼 하는구나’ 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내 얼굴에 하얀 백인의 얼굴이 짠! 하고 덧씌워지는 기분이었다. 마치 영어만 하면 내가 브리트니 언니가 된 것 같았고, 그럴수록 뭔가 ‘쏼라쏼라’하면서 영어로 떠들어대는 미래의 나를 꿈꾸었다. 거기엔 외교관, 통역사 등등의 미래에 대한 수식어도 바람을 타고 동동 머릿 속에 떠 오르곤 했다.

나는 영어를 잘 하는 줄 알았다. 적어도 스웨덴과 우크라이나에 있을 때 까지는 말이다. 우크라이나에서 한국어 교육을 할 때는 현지어인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를 배우느라 혀가 어떤 식으로 좀 꼬여버렸다. 예컨대 러시아어의 강한 억양이 깨끗하고도 순결해야 햐는 내 영어에 먹칠을 한 것만 같았다. 그리고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그걸 몰랐다. 교포인 남편과 한국에서 데이트를 할 때, 뭔가 내 영어가 어딘가 모르게 억양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미국에서 일상의 사소한 전쟁을 벌인다. 공립 초등학교에서 튜터링을 하는데, 4학년 학생은 내가 들어도 참 발음이 좋다. ‘아, 이걸 어쩐담. 왜 어쩌다가 내 혀는 이렇게 되고 말았던가?’ 자괴감이 든다. 괜히 나의 화려한 과거를 원망하기도 한다.
왜 러시아어를 배워가지고….. 왜 우크라이나를 가서…. 이 원망의 끝에는 결국 말도 안되는 ‘왜 한국인으로 태어나서는…’ 으로 돼는걸까? 아니다. 아니다. 이건 말이 안된다. 다시 원망의 화살표를 반대 방향으로 내밀어 보자. ‘그래도 내가 이 정도면 괜찮은 거다. 말도 안되는 소리. 아무리 내가 쏼라 쏼라를 꿈꾼다해도 그건 내 친구들이 말하는 ‘미쿡인’이 된다는 말이 아니다.’ 내 위치를 더 정확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확인해 보자. 서른이 넘어 외국 땅에 왔고, 그래도 이 정도면 잘 살고 있는 거다. 과거의 나를 부정하고, 왜 처음부터 미국서 태어나지 않았을까 라고 질문하는것만큼 어리석은 질문이 또 있을까. 이민자의 정체성은 두 세계를 사는 만큼 다채로운 색깔을 띈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에서 나의 혀는 우리집 엘리베이터 안에서 현란한 솜씨를 부린다.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에는 시니어 분들이 종종 계시는데, 그 중에는 중국인, 러시아인이 있으셔서, 이분들과 짧은 중국어와 나름의 러시아어로 대화를 하다보면 슬그머니 웃음 꼬리가 올라온다. 브리트니를 판타지로 꿈꾸었던 나는 콜로라도에서 ‘아시안 이민’언니로, 러시아어, 한국어, 영어를 나름 구사하는 당당한 언니가 되고 말련다.



조소현/제1회 텍사스 한인예술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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