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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지난 겨울은 행복하였네

자투리 털실을 정리하다 지난 겨울은 참으로 행복했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오래전 난치병에 걸려 의지대로 살 수 없었을 때 이야기다.

찻잔마저도 들 수 없고 걷지도 못해 운전대마저 놓을 수밖에 없었던 나를 지팡이 노릇까지 해주는 그이가 '조앤 패브릭'에 데리고 갔다. 오랫동안 털실 뜨개질을 잊고 살았던 나는 필요할 만큼의 빛깔 고운 실타래를 사 안고 나왔다. 가슴에선 벌써 좋은 꽃향기 피어오르듯 솔솔 기쁨이 솟아났다.

그랬다. 그 옛날 어린 시절 난 털실이나 헝겊조각을 가지고 놀기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방과 후 단골 바느질 집에 들러 자투리 헝겊조각을 얻어와 여러 가지 질감과 색상의 예쁜 조각천을 요리조리 맞추며 미래의 디자이너 꿈을 키웠다.

지난 겨울엔 하늘을 내다 볼 겨를도 없이 하루종일 벽난로 앞에 자리보전하고 누워지냈다. 이렇게 내 인생을 마감하는가 하는 두려움과 절망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1년 후 아직은 현재 진행형이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않은 결과 조금은 좋아져 자리에 일어나 앉아 뜨개질을 하게 되었다.



그럴 나이가 아닌 나를 찾아와 '어서 털고 벌떡 일어나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은가?' 하던 문병왔던 분들과 감사의 마음이라도 나누고 싶어 한겨울을 꼬박 벽난로 앞에 앉아서 뜨개질을 했다. 뜨개질은 첫째 치매에 좋고, 퇴행성 관절 예방에도 좋다. 또한 사랑까지 나눌수 있으니 일석삼조가 아닌가.

덧버선 40켤레를 떠서 나누고 먼곳에는 우편으로 부쳤다. 친구들은 1년치 엔도르핀을 받았다고 얼마나 좋아라 하는지. 결혼도 하지 않은 아이들의 언젠가 생길 아기들을 생각하며 다시 작은 이불을 떴다. 큰 병이 나고 얼마 동안 눈이 이중으로 보이는 고통을 겪으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다른 색상과 모양으로 아기 이불 세 개를 짜놓고 보니 이건 정말 작품이다. 하나하나 잘 포장해서 숨겨 놓았다가 언젠가 하나씩 건네 주리라.

끝으로 나를 위한 무릎 이불을 마무리하기까지 꽤 긴 시간이 소요됐다. 완성품을 보니 쓰기에도 아까울 만치 예쁘다. 선배 작가님에게도 내 것 같은 것을 한 달가량 걸려서 떠드렸다. 시애틀은 여름에도 필요할 것이니까. 그렇게 겨울 내내 뜨개질을 하며 왜 그리도 행복했던지.

뜨개질이 나에게 주는 여유로운 시간, 그건 다름 아닌 성찰의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받는 분들보다 나누는 나 자신이 더 행복하고 싶은 이기심 때문에 더 열심히 사랑의 덧버선과 이불들을 짰으리라. 하찮은 걸 받고도 요즈음 세상에 누가 남을 위해 이렇게 정성껏 손으로 짜 주는 사람이 있느냐고 하는 분을 만나면 기쁘다. 작은 것을 나눔에서 얻는 따스한 마음의 행복과 평온함은 그 무엇보다 훨씬 더 값진 것이 아닐까.


박유선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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