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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주의 살며 사랑하며]그리움과 기다림에 부쳐

한편의 시로 그 시를 쓴 시인의 정신세계를 흠모하고 그가 쓴 모든 시를 읽고 싶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몇 줄도 안 되는 시가 가진 힘이며 영향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젊은 날 우연히 황지우 님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시를 읽었을 때의 내 마음이 그랬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다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기다림은 꼭 약속이 있을 때만 느끼는 감정은 아니다. 소망이라고 표현되는 것에만 한정된 것도 아니다. 기다림은 그리움이 있는 자리마다 그 존재를 드러내는 그림자처럼 떠오르기도 하고, 가슴에 작은 이랑을 만들며 일렁이는 여울처럼 우연히 듣는 멜로디나 후각을 스치는 익숙한 냄새, 문득 스쳐간 사람이 일깨운 오랜 기억의 파편으로 잔잔하게 일깨워지기도 한다. 그리움이 쇠락해 갈 때 그래서 흔적 없이 사라질 때 영혼을 밝히던 불이 침침해지고 삶의 의지도 따라서 엷어져 간다. 나이든 사람들의 하루가 지루해지는 이유가운데 하나다.



친지들을 하나 둘 떠나보내는 가운데 흔히 말수가 줄어드는 연장자들은 육신이 성해도 점점 더 여위어가며 쇠약해지고 침울한 사람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조금씩은 다른 내용이겠으나 그 가운데 공통된 내용은 더 이상 기다리고 싶은 날도 그리워하는 대상도 마음에 남아있지 않았을 때의 현상이다.

신경숙 작가의 외딴 방이라는 장편소설에도 그런 모습의 사람이 나온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에도 눈에 불꽃을 담고 살던 열정의 사람이 형기를 마치고 자유의 몸으로 지내게 되었음에도 언젠가부터 심신이 쇠락해져서 보는 이의 가슴마저 철렁하게 하는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그는 그런 자신을 스스로 진단하면서 더 이상 그리워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탓이라고 해명한다.

그렇다면 그리움과 그 그리움이 주는 기대는 우리가 숨쉬는 한 결코 마감되면 안되는, 끝내 품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떠올리는 그리움은 젊은날의 내용처럼 또렷한 대상을 향한 절절함과 생생함과 간절함으로 덧입혀진 감정은 아닐지 모른다. 더 이상은 실체가 없이 한때 그리워한 기억과 관련한 추억으로만 존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을 그리워하는가 그리고 기다리는가는 다른 말로 하면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가를 드러내는 인생고백이다. 기다림의 속성가운데 하나는 자신과의 갈등이다. 미시간 애비뉴라는 시집에 실린“기다림”이라는 졸시에 그 갈등의 일면을 담은 적이 있다.

“기다림” –최선주-
기다림은/ 기다리마고 작정한 자의/예정된 고통이다// 혼자서 거는 주문에/ 심장의 무게를 다는 실험이다// 걷잡을 수 없이 쏠려가는/ 허물어짐의 시작// 염전에 잡아둔 바닷물 닳듯/ 수액을 말리우는 담금질// 송곳처럼 신경이 곧추서는/ 편집증의 징후// 초침소리가 천둥처럼 고막을 치고/ 설디 선 맥박소리가 파장을 키워간다.

찬란한 가을 햇살을 조명처럼 받으며 한여름 싱싱한 초록으로 햇빛을 녹여 양분을 만들고 땅으로부터 수액을 끌어올려 나무의 몸체를 키워낸 잎새들이 아름답게 나무와 이별하는 계절이다.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훌훌 떠나도 될성싶은 계절에, 이제는 그리움의 대상이 시공을 초월한 영역에서 찾아지기를-영원한 것을 신앙하기를. [종려나무교회 목사, Ph.D]


최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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