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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강은 여전히 흐른다

고성순 / 수필가
고성순 / 수필가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9/11/02 미주판 16면 기사입력 2019/11/01 17:29

두어 달 전부터 가족끼리 여행을 가자고 아이들이 졸라댔다. 비용도 저렴하고 멀지 않아 당일로 오고 갈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하기로 했다. 여행사가 제공하는 당일치기 여행은 너무 단조롭고 정해진 날짜가 있어서 식구들 전부가 갈 수 있는 곳이 마땅히 있지 않았다. 막연히 자연을 볼 수 있었으면 했다. 검색을 시작했다. 배타는 곳은 '픽 스킬'이라는 곳인데, 그랜드 센트럴 역에서 가는 기차 편이 있었다. 배편이 열 한시에 출발하니 적어도 열시 반까지는 도착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해야 한다고 잡도리를 하였다.

날이 밝았다. 깨우지도 않았는데 다들 일찌감치 일어나 들뜬 모습들을 하고는 부랴부랴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네 식구가 먼저 간 곳은 조그만 동네 식당이었다. 계란과 구운 빵 그리고 소시지를 먹으며 그윽한 커피 향까지 맡으니 마음이 저절로 호화로워졌다. 더불어 조잘대는 아이들의 즐거운 목소리. 아내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좁은 식당을 가득 채웠다. 햇살이 창을 통해 들어와 활짝 웃는 아이들의 얼굴을 따사롭게 비추었다.

센트럴 역에 도착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별자리가 새겨져 있는 천정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기차는 허드슨 강가를 따라 올라갔다. 강은 수직으로 뻗어있는 절벽들을 병풍처럼 두르고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긴긴 세월 물은 흘러 계곡을 만들고, 바람은 불어 바위를 깎았을 것이다. 아찔한 낭떠러지에 매달려 익어가는 나뭇잎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 출렁이는 강물이 하얀 거품을 만들며 촐랑댄다. 기차는 기적 소리를 내며 휘돌아 허리를 꺾는다. 갈대들은 강가에 촘촘히 서서 낯선 객들을 맞이해 반갑게 흔들어 댄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기찻길을 가로질러 넓은 공원이 보였다. 강가 따라 흐드러지게 핀 들꽃들과 여러 가지 조각품들이 늘어서 있고, 산책 나온 개들이 주인을 따라 꼬리를 흔들며 걷는다. 기름을 갈아 넣느라 조금 늦었다며 양해를 구하는 선주 딸 아가씨는 밝게 웃었다. 그 친절하고 상냥한 얼굴은 빛이 났다.

고동소리를 시작으로 선채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찬 바람에 물이 튀어 올라 선박 앞을 철썩 두드렸다. 배는 힘차게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나지막한 모습의 산등성이가 양 쪽으로 나타났다. 산들이 줄지어 마중 나와 나를 포근히 감싸듯 하였다. 하늘엔 구름이 잔뜩 끼어 우중충한데 날씨는 싸늘했다. 맥주를 주문했다. 말없이 흘러가는 강 위에서 맥주 거품과 뒷전을 맴도는 하얀 포말. 건빵을 안주 삼아 마셨다. 그 맛이라. 표현이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주위를 둘러싼 자연들이 나에게 위로를 주었다. 걱정도 근심도 없는 치유의 순간. 계속 되는 축복. 한 시간 반의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다시 선착장에 돌아와 이탈리안 식당을 찾았다. 간식으로 오징어에 옷을 입혀 튀긴 깔라마리를 시켰다. 파스타를 먹으며 따끈한 빵에 버터를 발라서 입에 넣으니 살살 녹았다.

기차를 타고 오면서 깊은 허드슨 강 계곡을 바라보았다. 집으로 향하는 전철에서도 집에 도착하여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족끼리 간 그날은 잊혀 지지 않는다. 발품 팔아 처음 간 곳.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과 평안함을 안겨준 여행이었다. 가슴의 답답함을 달래주던 그리고 복잡한 생각을 말끔히 없애주던 아름다운 강. 지금도 그 강은 여전히 흐른다. 나의 마음 속에. 그리고 고운 추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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