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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한국 문화의 본질은 '여유'

장소현 / 시인·극작가
장소현 / 시인·극작가  

[LA중앙일보] 발행 2019/11/02 미주판 14면 기사입력 2019/11/01 18:40

우리 속담은 무척 재미있다. 짧은 말 속에 우리 겨레의 기질과 가치관, 인생관 등이 농축되어 있어 흥미롭기 그지없다.

특히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 속담에 나타나는 이중성이다. 서로 반대되는 속담이 동시에 존재하는 양면성이 무척 흥미롭다. 예를 들어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해놓고는 '빛 좋은 개살구'요 '미인박명'이라고 받아친다. '보기 좋은 떡이 맛있다'면서도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낄낄 웃는다.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는 둘 다 놓친다'고 경계하면서도 '일석이조'나 '꿩 먹고 알 먹기'를 기대한다. 참으로 묘한 모순이다.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윽박지르고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으라'고 타이르다가도 상대가 막무가내로 뻗치면 '짚신도 다 짝이 있는 법'이고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고 위로하는 넉넉함을 보인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원망하면서도 '산 입에 거미줄 치랴'며 느긋해 한다. '누구나 제 먹을 것은 가지고 태어난다'고 여유를 부리기도 한다.

물론 이 속담들은 경우와 상황에 따라 절묘하게 달리 쓰인다. 그러면서 인간세상의 양면성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결코 세상을 한쪽에서만 보려들지 않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런 양면성은 우리 겨레의 넉넉한 마음에서 나온 것으로 여겨진다.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우리 겨레는 참으로 느긋하고 넉넉한 민족이었다. 그건 참 기묘한 저력이다. 밤새 안녕하셨느냐, 진지는 드셨느냐는 가슴 아픈 인사를 나누어야하는 살얼음판 세상을 살면서도 느긋함을 잃지 않는 마음, 그토록 많은 수난을 치르면서도 독살스러운 '복수 스토리'는 만들지 않은 고운 덕성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이런 시각은 미술에도 잘 나타난다. 우리 겨레의 옛 그림은 서양식의 원근법과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그려져 있다. 사물의 모든 면을 다 보여주는 통시적(通時的) 원근법은 묘한 매력을 준다. 물론 그것은 사물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불가사의한 생명력이 바로 우리 예술의 본질이기도 하다. 특히 민속공예품이나 민요 같은 민간예술에서 이런 본질이 싱싱하게 잘 나타나고 있는데, 대충대충 만들다가 만 것 같은 물건에서 기묘한 사람 냄새가 왈칵 풍겨나오곤 한다. 정교하게 완성된 예술품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풋풋한 생명력이다.

뭐라고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보리밥에 된장국과 풋고추에서 느끼는 그런 맛과는 또 다른 따스한 인간성을 느끼게 되는데 이런 사람 냄새야말로 가장 우리 겨레다운 특질이고 바로 우리의 진짜 힘이다.

그렇던 우리 겨레가 지금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조급하고 살벌한 민족으로 변해버렸다. 세계 어디에 가서나 '빨리 빨리'를 외친다. 너나 할 것 없이 급하고 각박하다. 뭐든지 빠르지 않으면 못 견디는 조급함에 시달리며 허둥지둥 대충대충 살고 있다.

물론 그런 덕택에 눈부신 성장을 이룩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장 소중한 여유를 잃어버렸다. 이제는 우리도 제법 다리 뻗을 만하니 바늘허리 매어 쓰려고 허둥대는 조급함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다. 쇠털같이 많은 나날인데… 가다 못가면 쉬었다 가지….

지금 가장 걱정스러운 건 나는 옳고 너는 죽일 놈이라고 아우성치고 삿대질해가며 오른쪽이냐 왼쪽이냐를 따지는 편가르기 행태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오른쪽과 왼쪽 사이에 드넓은 공터가 있고, 거기 느긋하게 웃으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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