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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기만의 시대에 진실을 말하다

이달 중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1000일을 맞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40%대 지지율을 유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조차 그가 정부를 혼란스럽게 통치하고 있다고 인정합니다. 내각 원년 멤버 중 반이 떠났고 백악관 대통령 비서실장을 포함해 고위직을 대행하는 공직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그가 취임 이래 1만3000개 이상의 거짓 또는 호도하는 주장을 해왔다고 보도했습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본인이 싫어하는 언론 보도를 '가짜 뉴스'라고 하며, 이를 보도하는 언론을 '국민의 적'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최근 몇 주 사이에 워싱턴, 어쩌면 미국 전체의 정치적 맥락을 변화시킬 사건들이 터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시리아 북부에 주둔하던 미군을 철수시키고 신임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가장 유력한 민주당 경쟁 후보를 조사하게끔 압박을 가했다는 증거가 쌓이며 트럼프 행정부에는 새로운 위기를, 국가 기관들에게는 또 다른 시험을 치르게 했습니다.

시리아 북부에서 쿠르드군과 연합해 이슬람국가(IS)에 맞서고 터키군의 쿠르드족 공격까지 막던 미군을 철수시킨 트럼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결정의 영향은 그 처참함이 너무나 분명합니다. 미치 맥코넬 상원 원내대표를 포함한 공화당 의원들조차 트럼프의 분노를 무릅쓰고 이 정책을 비판했습니다.



연방하원은 철수 결정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354 대 60이란 압도적인 양당 찬성으로 통과시켰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사건으로 미국의 책무에 대한 국제적 믿음을 저버렸습니다. 동맹국들은 우려하는 반면 러시아는 흐뭇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원의 탄핵 조사를 촉발한 것은 또 다른 외교정책 사안인 우크라이나 이슈입니다. 이것은 한 정부 내부고발자에 의해 촉발됐습니다. 언론에 유출한 것이 아니라 정부 지휘체계에 필요한 절차를 신중히 밟았습니다. 백악관 측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8월 새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자신의 반대파를 조사해달라고 부탁한 통화 내용을 담은 녹취록을 공개한 것도 그의 폭로 이후 벌어진 일입니다. 이 사건은 정부에서 안보 직책을 역임한 몇몇 민주당 의원들이 탄핵 조사에 동참하도록 이끌어낸 변환점이 됐습니다.

닉슨과 클린턴의 탄핵 정국과는 달리 이번 쟁점은 외교정책을 둘러싼 것입니다. 의회가 탄핵 판단을 내리는데 필요한 사실과 배후 내용을 제공하는 것은 외교관과 공직자들의 몫입니다. 직업 외교관들에게는 낯설고 불편한 자리입니다. 30년 넘는 세월 공화당과 민주당 정부를 위해 직업 외교관으로 일한 저는 압니다. 군과 마찬가지로 외교의 핵심 가치는 초당파주의입니다. 1980년대 제가 한국에서 모셨던 리차드 워커 주한 미 대사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임명한 극보수 공화당원이었습니다. 놀랍게도 '미국 국내 정치는 국경선에서 멈춰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바로 워커 대사였습니다. 미국을 대표해 해외에서 일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우리는 초당파적 공직자로서 '모든 국내외 적에 대항해 미국의 헌법을 수호하고 옹호하겠다'는 서약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지난 11일 마리 요바노비치 전 주 우크라이나 대사는 바로 이 격언으로 하원 청문회에서 그의 증언을 시작했습니다. 열흘 후 요바노비치 대사의 갑작스러운 본국 소환으로 대행을 맡게 된 윌리엄 테일러 대사 대행의 성명서에서 이어지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테일러 대행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활용해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것에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테일러 대행과 요바노비치 전 대사는 물론 정직하게 발언하기 위해 나선 수많은 민간과 군 관계자들의 전문성과 애국심에 저는 감탄합니다. 양극화된 환경에서도 초당적 입장을 고수하며 진실을 말함으로써 미국의 핵심 가치와 기관들을 강화하려는 투지에 감명받았습니다.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은 '1984'와 '동물농장' 작품에서 디스토피아 세계를 묘사했습니다. 그 이유로 그의 이름은 '오웰 같은'(Orwellian)이란 형용사로 자리잡았습니다. 오늘날 그의 책을 읽는 밀레니얼 세대는 "보편적인 기만의 시대에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혁명적 행위"라는 그의 주장이 획기적이라기 보다는 오웰이 단지 관찰을 잘 했다고 할 것 입니다. 제가 알고 지낸 외교관과 관료 중 혁명가는 없지만 민주주의를 지탱하기 위해선 공직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로운 감사의 마음이 생깁니다.

한미경제연구소장


캐슬린 스티븐스 / 전 주한 미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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