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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멀리건 신고제

기업인 네 명이 골프 모임을 계획하면서 룰을 정하다 이런 얘기가 오갔단다. "멀리건은 어떻게 할까요." 다른 이가 말을 받았다. "거, 허가제 말고 신고제로 합시다. '나 멀리건 치겠소' 한마디만 하면 자기 마음대로 다시 칠 수 있기로".

좀 전까지 규제 현실을 얘기하며 답답함을 토로하던 이들 사이에 웃음이 터졌다. 허가제라면 캐디나 동반자들에게 일일이 승낙을 받아야 다시 칠 수 있을 터다. 한 사람이라도 부정적으로 반응하면 '비긴 어게인' 하기 쉽지 않다. 신고제라면 다르다. 다시 치고 안 치고를 본인 뜻대로 결정할 수 있다. 무슨 일이든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으면 도전할 수 없는 기업인의 처지가 담긴, 요새 말로 '웃픈(웃기지만 슬픈)' 얘기가 아닐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를 얘기하면서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을 약속한 날, 승차공유 서비스 '타다'는 검찰 손에 끌려 법정으로 가는 신세가 됐다.

법이 금지하지 않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허용하자는 네거티브 규제 도입 주장은 2015년 3월 우버가 퇴출되면서 본격 주목받기 시작했다. 우버는 국내 진출 2년 반 만에 이 땅을 떠났다. 운수업계 고발에도 버티던 우버는 2014년 12월 19일 서울시의회가 우버 영업을 신고할 경우 포상금을 지급한다는 조례안을 통과시키자 백기를 들었다.



문 대통령 언급대로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은 국가적 차원에서 검토할 때가 됐다. 4차산업혁명은 '법이 허락하고 있는 일만 할 수 있는' 포지티브 규제 하에서는 이뤄내기 어렵다. 과거의 법으로 미래를 재단해선 안된다. '차는 사람이 운전해야 한다'는 조항 때문에 자율주행차량이 거리에 나올 수 없고, '의료 데이터는 디지털 기기로 주고받을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간단한 처방도 일일이 병원을 찾도록 해서는 신산업이 싹을 틔울 수 없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복잡다단하고 이해관계도 중층적인 미국·중국도 시행 중인 네거티브 규제를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 신사업은 신고만으로도 가능하게 하는 대신, 징벌적 배상을 도입해 서비스나 신기술 출시 전에 꼼꼼히 준비하도록 하면 국내에서도 세계적인 ICT 기업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일자리 해법도 거기에 있다.

참, 아까 그 기업인들 골프모임에서 아무도 함부로 멀리건을 남발하지 않았단다. 전체 경기 진행 속도, 골프 매너에 대한 타인의 평가 등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란다, '시장의 눈'에 맡기면 될 일을 공무원 손에 규제 권한으로 쥐여준 채, 우리 사회는 너무 버겁게 움직인다. 4차산업혁명이 눈앞에 와있는 이 시대에.


박태희 / 한국 산업2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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