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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홀로서기

신호철
신호철 

[시카고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11/04 17:05

시카고에 첫눈이 내렸다.

오전 내내 장난처럼 눈발이 날리더니 거리에도, 파킹한 차 위에도, 이제 붉게 물들어가는 내 머리 위에도 하얀 눈꽃을 피웠다. 살아왔던 기억으론 제일 일찍 찿아온 눈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할로인 복장을 한 아이들이 삼삼오오 문을 두드리며 "trick or treat"를 속삭이듯 겁을 주며 한 웅큼의 캔디를 집어가는 시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나는 풍성한 잎들을 떨구었다. 계절이 바뀌며 소중히 품어온 분신들을 발 아래 수북히 쌓아놓았다. 앙상히 드러낸 가지사이로 찬 바람이 불고 나는 더 이상 키를 키우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꺼꾸로 자랐다. 어두움을 보담으며 바람에 흔들리는 자신을 지탱하려 나는 꺼꾸로 서서 하늘만큼 높게 아래로 아래로 손을 뻗었다. 푸른 하늘이 춤추는 곳, 들녘에 타는 노을이 지는 곳, 풀섶 들꽃들이 피고 지는 언덕이 그리웠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살을 에는 바람, 천근의 무게를 버티기 위해 나는 오늘 이후 고유한 내 권위를 인정하되 하늘하늘 보이는 것만을 되새기지 않았다.

옳은 결단엔 늘 아픔이 가로 막았다. 하늘의 별과 달빛이 소리없이 내리는 밤. 큰바위와 돌멩이들을 피해 손을 뻗었다. 나는 꺼꾸로 자랐고 상처난 손끝의 섬김은 하늘을 향해 뻗은 둥지와 마른 가지, 마지막 날리는 잎새들의 버팀목이 되고 디딤돌이 되었다.

지금 나의 역할은 새싹이 움트는 따뜻한 어느 봄날까지 홀로 꺼꾸로 서서 깊게 뿌리내리는 것이다. 결국 홀로서기의 힘은 뿌리에 있는 것이다.(시카고 문인회장)

꽃 한송이 홀로 피었다
바람에 흔들리며 얼굴을 내밀었다
하얀 갈대도 어느새 홀로 피었다
온 풀섶을 뒤덮었지만
그 줄기 하나 하나 홀로 피워냈다
보여주려고만 할 때
홀로서기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비 바람 앞에, 천근의 무게 앞에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 설 때
비로소 홀로서기는 시작 된다
쏟아 버리지 않고 별빛처럼 하나로 모을 때
나는 없고 당신만 보일 때
모든 것이 그곳에 있게 되는 것이다
고난 속에서 진실과 거짓은 들어난다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걸음을 옮기는 일
결국 홀로서기의 힘은 뿌리에 있는 것이다
당신 앞에 날마다 서는 그 힘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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