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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삶] 자화상의 민낯

불완전한 인간을 만든 신의 애프터서비스는 용서다.

-함민복 시인의 ‘죄’ 전문

학부형으로 알게 된 라자는 오십 대의 필리핀 여자다. 그녀는 한국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이다. 한국 사람과 문화, 상품에 이르기까지 관심과 사랑이 대단하다. 한국 드라마를 즐겨보며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 샴푸는 뭘 쓰느냐 화장품은 뭐가 좋으냐 등등 관심사의 범위도 넓다. 그런 그녀가 요즘 심기가 편치 않다. 나 역시 그녀를 보기가 민망하다. 이유는 이렇다.

필리핀에서 ‘캔슬 코리아’ 해시태그 운동이 불처럼 번지고 있다. 벨라 포치라는 여성이 팔에 새긴 문신을 찍어 SNS에 올렸는데 그 모양이 일본의 욱일기 문양과 비슷했다고 한다. 영상을 본 한국 네티즌들이 한일관계의 불편함을 들어 항의했다고 한다. 거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그녀가 즉각 사과했다니 말이다. 욱일기가 뭔지 정말 몰랐다며 사과하고 영상도 내렸다고 한다.



과정을 이해하고 사과를 받아들이면 끝나는 것이었는데 한국 네티즌들은 맘이 많이 상했는지 계속 심한 댓글을 달았다. 그 파장은 필리핀 전체를 비하하는 것으로 번졌다. 작고 가난한 나라라느니, 교육받지 못한 자들이라느니 하면서 감정을 자극했던 모양이다. 그러자 필리핀 네티즌들이 반격에 나서며 반한 감정이 높아지게 된 것이다.

벨라 포치라는 여성은 중국의 SNS인 틱톡 이용자로 팔로워가 십 수만 명이나 되는 유명인이라고 한다. 일은 순식간에 들불 번지듯 번져 갔다. 한국인들은 필리핀에서 생활하면서 크고 작은 피해를 보기도 했던 기억까지 되살리며 공격했고 양국의 네티즌들은 묵은 감정들을 들춰가며 화를 돋우고 있는 모양이다.

무조건 한국 네티즌들이 사과해야 한다는 자정의 목소리가 높은가 본데 엎질러진 물이 아닌가 싶다. 누구나 자존심을 건드리면 참기 힘들다. 하물며 인종차별적 모멸감을 주는 건 위험하다.

민족적 우월감 갖고 으스대는 것은 우리만은 아닐 것이다. 잘사는 나라에 대해서는 동경하고 못 사는 나라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것은 누구에게나 조금씩 있는 속일 수 없는 감정의 잔영이다. 그래서 국가 간에는 비슷한 시비들이 왕왕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노골적으로 상대를 헐뜯으며 비위를 건드리는 일은 시대착오적이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작고 무식한 민족 운운하며 비하의 발언을 한다면 참을 수 있겠는가.

필리핀은 60년대만 해도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경제 사정이 좋은 나라였다. 소득 수준이 당시는 우리의 두 배 정도였다고 한다. 지도자들의 독재와 부패, 과도한 빈부 격차로 추락한 나라다.

다양한 민족들과 어울려 살아야 하는 미국 속의 우리, 우리만이라도 국가적 우월감으로 타민족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 지금의 상황이 어떠하든 각 민족에게는 지키고 싶은 문화가 있고 계승하고 싶은 전통이 있어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살아간다. 국가의 위상은 자만하는 사이에 곤두박질하기도 한다.

라자에게 한국인들이 다 그런 건 아니라고 설명하는 일은 곤혹이다. 나 역시 아니라고 부인해 보지만 그들보다 잘사는 나라 사람임을 암암리에 드러내고 경제적으로 부유해진 모국을 내세우며 위세를 떨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조성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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