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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아빠 찬스, 엄마 찬스

세상이 바뀌면서 듣도 보도 못한 신조어가 많이 등장하니 어지간해서는 무슨 의미인지조차 따라 잡기가 쉽지 않다. 나이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적응이 빠르다는 ‘얼리 어댑터(Early Adapter)’라고 자부해 온 나로서도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서 자주 쓰이는 용어들은 생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발한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톡톡 튀는 센스가 놀랍다.

몇년 전부터 ‘아빠 찬스’, ‘엄마 찬스’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혼자 힘으로는 해결 할 수 없는 일을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통해 해결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얼마 전 한국 시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당시 법무장관 딸의 각종 특혜 의혹이나 요즘 다시 뉴스의 중심에 있는 현직 법무장관 아들의 군대생활 당시 특혜 논란이 ‘아빠 찬스, 엄마 찬스’의 대표적인 예다.

사실 이런 사례는 예전부터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해 있던 터라 전혀 새삼스러울 게 없다.

1970~80년대 군대생활을 해 본 경험으로 비춰 봐도 힘없고 ‘빽’ 없는 자식들은 전방으로 가고, 힘 좀 쓴다는 아버지를 둔 친구들은 후방이나 편한 보직으로 가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겉으로는 공정사회를 외치면서도 각종 청탁을 통해 힘을 써서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성과를 얻어냈다고 자랑하는 무용담을 한 두 번 안 들어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그런 찬스를 사용할 능력이 없는 대다수에게 심한 박탈감을 안겨준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란 우리 동급생들의 부모들은 거의 다 가난한 농사꾼들이었다. 어쩌다 부모들이 학교에 오면 아이들은 행색이 볼품없는 농사꾼 부모들이 창피하다고 다시 학교에 오지마라고 했다. 그러니 우리 때야 ‘아빠 찬스, 엄마 찬스’를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었다.

그런 시골 출신들도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각계각층에서 나름 눈부신 활약을 펼치곤 해 오히려 부모들이 잘 난 ‘자식 찬스’를 쓰기도 했다.

요즘에는 직장의 인턴 자리나 입시에 도움이 되는 봉사활동 자리 하나 구하는데도 부모 찬스가 필요하다고 한다. 인기 있는 대기업에 부모의 영향력을 이용해 입사하는 것은 부모 찬스의 대표적 성공 사례일 것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는 부동산 가격으로 부모 찬스 없이는 아파트 전셋집 하나 마련할 수 없는 지경이다. 한 세대를 넘는 세월이 흘러 이제 그런 아빠의 나이도 지났지만 자식들을 위해 찬스를 써 줄 능력이라곤 없는 처지라는 생각이 들면 가슴 한편이 서늘해진다. 대다수 부모들은 같은 입장이라는 사실에 위안을 받긴 하지만 말이다.

미국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딸이나 아들 사위까지도 백악관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걸 보면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누구의 아들, 딸로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능력과는 상관없이 인생이 결정된다는 건 너무 억울한 일 아닌가.

현직 법무장관 아들의 당시 군대 동료가 했다는 “우리 엄마도 누구였으면 좋겠다"라는 말이 가슴을 친다.


송훈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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