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김건흡 칼럼] 다산 정약용의 애틋한 부부애

다산 정약용은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한국 최대의 실학자이자 개혁가이다. 15세에 한 살 연상인 풍산 홍 씨와 결혼한 다산 정약용은 공교롭게도 결혼 60주년이 되는 회혼일에 먼저 눈을 감고 홍씨는 2년 후인 1838년 남편을 뒤따른다. 10대 중반의 철없던 나이에 결혼하여 힘든 과거 공부와 분주한 벼슬살이로 인해 부부간의 애틋한 정을 제대로 나누지 못한 다산은 정치적 반대파의 모함으로 인해 한창 나이인 40세에 유배를 떠나며 사랑하는 아내와 눈물의 생이별을 하게 된다.

죄인의 신분으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며 기약 없는 머나먼 귀양길을 떠나는 남편을 아내는 세살박이 막내아들을 품에 안고 눈물로 전송한다. 한참 말을 배우며 재롱을 피우던 귀여운 막내가 네살에 요절하였다는 소식에 자신의 애절한 슬픔은 뒤로 하고 제 뱃속에서 낳은 애를 흙구덩이 속에 집어넣는 어미의 애절한 심정을 헤아려 정성껏 보살피기를 머리카락 하나의 틈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두 아들과 며느리에게 부탁한다.

홍씨 부인은 시어머니를 모시며 지아비 없는 허전한 집을 지키며 생계를 꾸려 나갔다. 다산이 장모의 죽음을 슬퍼하며 생전의 공덕을 칭송하기를 “찾아오는 손님 머리 잘라 술상 차렸고 늙은 시 부모님께 방아를 찧어 즐겁게 해드렸다지”했는데 친정어머니의 그 고운 심성을 홍씨 부인이 그대로 이어 받은 것이다.

사랑하는 지아비를 강진으로 유배 보내고 자식들을 키우며 그리운 정을 삭이던 홍 씨는 누에치기를 좋아하는 자신에게 시를 지어줄 정도로 다정하였던 남편에게 시집올 때 입고 왔던 여섯 폭 다홍치마를 보낸다. 10여년의 유배생활에 몸과 마음이 지쳤을 지아비가 장롱 속 깊이 간직했던 빛바랜, 하지만 신혼시절의 추억이 스며있는 다홍치마를 보고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을까. 이에 다산은 그 비단치마를 재단하여 두 아들에게 교훈의 글을 써주고 외동딸에게는 매화에 새를 그린 매조도(梅鳥圖)를 선물한다.



파르르 새가 날아 뜰 앞 매화에 앉네 / 매화 향기 진하여 홀연히 찾아왔네 / 여기에 둥지 틀어 너의 집 삼으렴 / 만발한 꽃인지라 먹을 것도 많단다.

그가 강진에서 귀양살이 한지 여러 해가 지났을 때 부인 홍씨가 헌 치마 여섯 폭을 보내왔다. 이제 세월이 오래되어 붉은 빛이 바랬기에 가위로 잘라 네 첩을 만들어 두 아들에게 주고 그 나머지로 족자를 만들어 딸에게 준다. 은은한 매화 향기에 취해 쓸쓸한 유배 생활의 위안을 삼고 있는데 어디선가 날아온 한 마리 새가 정원의 매화나무에 앉는 것을 보고 다산은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꿈속에서라도 보고 싶은 부인이 혹 새가 되어 날아온 것은 아닐까. 바다 건너 흑산도에 계시는 약전 형님이 보고 싶은 마음을 새에게 대신 보내지는 않았을까. 찾아오는 이 없는 쓸쓸한 유배객을 위로하려 먼저 가신 아버님이 보낸 귀한 친구인가.

지필묵을 꺼낸 다산은 몇 해 전 부인이 인편에 보내온 시집올 때 입었던 색 바랜 다홍치마를 꺼내 그 위에 애절한 마음을 그리고 안타까운 심정을 시로 적어 외동딸에게 선물한다. 고향 마재 마을을 지키며 남편을 손꼽아 기다리던 홍씨에게 지아비의 해배 소식은 맨살을 꼬집어보아야만 믿길 정도로 거짓말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립문에 들어서는 남편의 모습에 부인은 고개 돌려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떠날 때 나이 사십의 건장한 청년의 모습은 온데 간 데 없고 깊이 패인 주름살에 백발이 성성한 초로의 모습으로 돌아왔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자신은 그렇다 치더라도 남편만은 덜 늙었기를 바랐을 것이다.

유배지에서 다하지 못한 저술 작업을 마무리하며 조용히 여생을 보내던 다산은 60년 전, 15살의 나이로 발그레한 볼에 꽃가마 타고 온 새색시를 맞던 그 날 숨을 거둔다.

“육십 평생 바람개비 세월이 눈앞을 스쳐 지나는데 무르익은 복숭아 봄빛이 마치 신혼 때 같아라.”

다산이 이승을 하직하던 날 마지막으로 남긴 그의 회혼시(回婚詩)는 지금도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꽃다운 나이에 시집와 60년 동안 고락을 같이 한 이팔청춘 곱던 얼굴의 여인을 주름살만 가득한 할머니로 만든 무심한 세월에 대한 회한이 진하게 묻어 있다.


김건흡 청솔시니어센터 회원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