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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열며] 속초

그때 내가 간절히 원했던 건, 어서 빨리 버스에서 내리는 것이었다. 이 끔찍한 멀미만 멈출 수 있다면, 그곳이 속초든, 도로 한복판이든, 당장 그 버스에서 내리고 싶었다. 잠깐이면 도착한다며 나를 꼬득인 할머니가 원망스러웠고, 그 말을 믿은 내가 한심했다. 그런데, 속초에 도착하는 순간, 끔찍하던 멀미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속초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짭짤한 바닷바람, 비릿한 바다 내음, 그리고 머리 위에 쏟아지는 반짝이는 별 알갱이들, 내 생애 처음 만난 바다 마을 속초는 아주 특별했다.

바닷가가 고향인 나의 할머니는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 속초에 가셨다. 내가 아홉 살 되던 해, 나는 할머니를 따라 나섰다. 명절도 아닌데 버스 터미널에는 사람이 많았다. 매표 창구의 담당자는 우리에게 타고 갈 버스를 여러 번 일러 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바로 속초행 버스를 찾지 못했다. 나는 너무 어리버리했고, 할머니는 마음이 바빴다. 묻고 또 물어 한참 만에야 속초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속초행 버스 안은 부산했다. 바리바리 싼 가방들과 꽁꽁 묶은 보따리들이 통로를 꽉 채워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내가 탄 버스는 다른 버스들 틈을 빠져 나와 천천히 속초로 출발했다. 버스는 아주 오래 달렸다. 아주 잠깐 휴게소에 들렸을 뿐, 우리를 태운 버스는 쉼 없이 달렸다. 멀미를 심하게 하는 나는 멀미약을 먹고도 멀미를 해댔고, 속초에 도착할 때까지, 멀미약에 취해 정신을 놓고 있었다. 속초에 도착했을 때 날은 이미 어두웠었다. 내 몰골은 엉망이었다. 내 머리카락은 구토물에 떡 져 있었고, 얼굴은 침으로 번들거렸다. 할머니를 모시러 나온 외삼촌이 나를 보고 흠칫 놀라시며, 내게 무슨 일 있었냐고 물으셨다.
나도 내게 무슨 일 있었는지 궁금했다. 어쩌다 이런 몰골이 되었는지.

그런 나를 깨운 건 속초의 밤 하늘이었다. 진한 감색의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산산 조각 나 있었다. 누군가 절구로 빻아 하늘에 뿌려놓은 듯, 날카로운 조각조각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조각들이 살포시 내려와 나의 살갗에 박혔다. 온 몸의 잔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작은 집에 도착했다. 외할머니께서는 앉은 채로 쪽문을 여시고, 큰 소리로 할머니 이름을 부르셨다. “금순씨 어서 오지비” 나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외할머니께 인사도 못 하고 기절한 듯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방문을 여니, 막 자른 수박 향인 듯, 비릿한 미역 향인 듯한 바다 내음이 났다. 눈을 감으니, 조용히 바다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나는 바다 소리에 따라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고,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나도 바다가 된 듯했다. 특별했다. 뱃일을 하고 돌아오신 외삼촌이 반쯤 마른 오징어를 건네주셨다. 오물오물 씹었다. 속초 바람 맛이 났다. 간이 딱 맞았다.

내가 다시 속초를 방문한 것은 30년이 지나서였다. 여전히, 나는 멀미에 시달렸다. 하지만, 바다 마을 속초는 여전히 수박 향이 났다. 바다는 숨 쉬고 있었고, 뱃고동 소리도 정다웠다. 그리고, 반쯤 마른 오징어도 짭짤한 바닷바람 맛 그대로였다. 별들도 변함 없이 밤하늘에 가루가 되어 펼쳐져 있었다. 속초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나는 다시 아홉 살이 된 듯 했다.


강인숙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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