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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비하인드 스토리 (Behind story)

전화가 울린다. ‘현관에 나와 보세요.’ 뜨거운 김이 서린 보자기가 놓여 있다. 한 지인이 보자기를 놓고 벌써 차를 돌려 나가며 손을 흔든다. 뜨끈한 삼계탕, 미역국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순대와 먹고 힘내라는 사랑의 메시지까지, 순간 목울대가 축축했다. 사랑이 듬뿍 담긴 음식을 먹으며 행복했다. 가장 고귀한 삶은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 아닐까. 잠시 그녀의 향기에 취해본다.

갑자기 닥친 코로나바이러스 재앙으로 사회적 거리두기에 개인적인 성격과 취향까지 합세하여 심리적 거리두기로 세상은 우울하고 황폐되어가고 있다. 심지어 집 밖은 병균의 세계이며 나와 내 가족 외에는 모두 환자나 보균자라고 믿는다.

며칠 전에 여아를 순산한 딸네 집을 지나갈 일이 생겼다. 미리 연락을 취하고 잠깐 손녀를 창가에서 보기로 했다. 문을 두드려도 나오지 않는다. 키패드를 누르려 해도 스크린 도어가 잠겨 있다. 차고로 가보려 하니 방금까지 열려 있던 차고 문이 내려진다. 손녀가 창가에 나타나 잠깐 손을 흔들고, 바이 하고 뒤돌아서는 순간 차고 문이 다시 열린다. 그들은 내가 현관뿐 아니라 차고 안에서 얼씬거리는 것도 부담이 되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최전방인 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하고 있어 경계하는 것을 이해는 하지만 어쩐지 씁쓸하고 서운하고 무엇보다도 슬펐다. 집에 돌아와 올바니에 사는 아들에게 전화로 하소연하자 “엄마. 당연하지, 나라면 내 집 근처에 아예 오지도 말라고 했을 거야” 한다. 세상에!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히어로(hero)라고 부른다. 그렇게 라벨을 붙여 놓고 우리를 세균 덩어리로 본다.

나의 직장동료들은 평균 연령대가 이 삼 십 대로 애 엄마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힘든 하루를 마친 후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가면 제2의 직업이 시작된다. 샤워 후 음식을 만들어 식솔들을 잠자리까지 책임진다. 한번은 ‘너 집에 가면 격리하니?’ 물었다가 무안을 당했다. “내가 안 하면 누가 하는데” 나도 집에 남편과 97세의 시어머님이 계시다. 우리 영웅들도 병원을 벗어나면 평범한 시민이다. 단지 철저하게 주의하고 관리하는 방법밖에 없고 모두 잘하고 있다.



우리 병원은 원래 97개의 중환자실 침상이 있는 데 절정기에는 두 배가 되었다. 간호사 수가 워낙 부족해 보통은 1~2명의 환자를 맡지만, 지금은 3~4명을 돌보고 있으니 완전 힘이 든다. 심신이 모두 지쳐 있고 장시간 N95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하므로 콧잔등과 귀 뒤에 물집이 생겨 염증으로 모두 고생한다.

인간이 재앙을 맞으니 개개인의 본성이 다 드러난다. 많은 시민이 우리 영웅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문의가 쇄도한다. 요즘에는 헤드 밴드에 큰 단추를 달아 마스크를 귀 대신 단추 위로 거는 발명품이 인기 짱이다. 또 ‘Fund for Hero’를 열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번 재앙을 통해서 미국인들의 시민의식을 많이 실감한다. 성숙한 인간은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하지 않고 타인과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심한다. 사람마다 능력과 재능이 다 다르다. 나에게 주어진 현 상황에서 나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꼭 재력일 필요는 없다. 시간도 좋고 위안도 재능도 기부할 수 있다. 기부는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는 것이다.


정명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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