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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간호사 딸의 격리 생활

막 자려고 누웠는데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인데 너무 잠이 와서 전화한다고 했다. “그래 그래 잘했어.” 자려던 내 잠이 천리만리로 달아났다. 운전 중에 잠이 오면 언제든지 전화하라고 일어두기도 했지만 딸은 고생하고 있는데 잠이나 자려고 누웠다는 게 너무 미안하고 죄스러웠기 때문이다.

샌디에이고에 살고 있는 딸은 자기 집과 40분 거리에 있는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대학에서 생화학을 전공한 때문인지 몇 해 전 아이가 셋이나 있는데도 간호사가 되겠다며 늦은 대학원에 갔다. 그 이후 아내로, 세 아이의 엄마로, 그리고 학생으로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으로 살았다. 그래도 그때는 바리바리 싸들고 가서 허리가 휘도록 집도 치워주고 반찬도 만들어 놓고 오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가볼 수도 없다.

딸은 그렇게 2년 동안 하루에 잠을 다섯 시간만 잔 대가로 기어이 간호사가 됐고 지금은 3년째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이제 모든 일이 몸에 배서 막 편해질 즈음 병원으로 코로나 환자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코로나 환자를 돌보기 시작한 이후부터 그 가족들은 집안에서도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살게 됐다. 딸은 자신의 모든 물건을 아래층 거실 끝방으로 옮겨놓았다. 남편과 아이들은 2층에서, 딸은 혼자 아래층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한 지붕 밑에 살면서도 벌써 두 달째 가족과 함께 밥도 먹지 않고 잠도 같이 안 자고 있다. 출입문도 서로 다른 문을 사용하고 있다. 아이들과 남편은 거라지를 통해 2층으로 올라가고, 딸은 집 앞에 차를 두고 현관문을 통해 아래층에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그뿐 만이 아니다. 딸이 지나다니는 통로는 투명한 비닐로 칸막이가 쳐져 있어서 아이들과 남편은 그쪽으로 절대 넘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딸이 병원에서 언제 바이러스를 달고 올지 모르기 때문에 가족들이 집안에 삼팔선을 그어 놓고 항상 신경을 곤두세운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목사인 사위가 집안일을 전적으로 도맡아서 하고 있다. 인원수가 그리 많지 않은 미국인만 참석하는 교회인데다 그나마 요즘은 동영상으로 설교하고 있어서 새벽이면 아내의 도시락도 싸놓고 퇴근하고 오면 저녁이 식탁에 올려져 있다고 한다.

딸이 쉬는 날은 부엌에서 반찬도 만들고, 아래층 거실에서 비닐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아이들과 이야기도 한다고 했다. 아이들을 유난히 좋아하는데도 안아보지도 못하고 비닐에 대고 서로 뽀뽀한다고 했을 때, 무슨 코미디 같아서 웃었다. 전화를 끊고 난 후 가슴이 한참 동안 먹먹했다. 어미가 속없이 웃어서가 아니었다. 그들 가족이 한 집 안에 살면서 서로 접촉도 못하고 사는 것이 서글퍼서도 아니었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옷을 다 벗어서 문밖에 두고 샤워장으로 직행한다는, 그러면서도 “엄마 건강 조심하세요”라는 말이 가슴 아파서였다.

세상에 무슨 이런 일이 있는지 모르겠다. “엄마 난 괜찮으니까 내 걱정은 마세요.” 집에 거의 다 왔다며 전화를 끊은 딸의 피곤한 목소리가 오래도록 귀에 남아 있다. 어둠 속에 앉아 멍한 어둠을 바라보고 있다.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정국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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