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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환 목사가 기억하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 "허전하고 슬프지만 다시 만날 소망이 있기에"

그레이엄 목사의 여의도 집회 통역
그 이후 교계에서 주목받는 계기로

영어 이름 '빌리'ㆍ출신학교도 같아
미국 방문 때마다 자택 찾아가 만나

3년 전 마지막 방문해 담소 나누기도
"서울서 다시 전도 집회 하자" 말해


22일(한국시간) 김장환 목사(83·극동방송 이사장·사진)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 타계 소식에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만큼 오래된 인연이었다.

공교롭게도 김 목사의 영어 이름 역시 '빌리'. 두 사람은 지난 1973년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100만 명 이상 모인 가운데 열린 전도 집회에서 연이 닿았다. 당시 김 목사가 그레이엄 목사의 통역을 맡은 게 교분을 쌓게된 계기였다.

그레이엄 목사로 인해 김 목사도 덩달아 주목을 받았다. 그레이엄 목사의 여의도 집회 현장은 당시 미국 주류 방송을 통해 중계되면서 김 목사의 열정적인 목소리도 함께 전파를 탔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김 목사의 '빌리'라는 영어 이름과 성장 배경이 알려지게 됐다. 김 목사가 한국 전쟁 직후 미군 부대에서 허드렛일을 할 때 미군 병사들이 영어 이름을 지어준 이야기, 빌리 그레이엄 목사와 출신 학교(밥존스 대학)가 같다는 점 등은 당시 39세 무명의 목사였던 김장환이 한국 교계에서 지명도를 얻는 계기가 됐었다.

인생은 인연을 통해 흘러가는 것일까. 당초 그레이엄 목사 측은 통역을 한경직 목사에게 부탁했었다. 그레이엄 목사가 처음 방한(1952년) 했을때 통역을 맡았던 이가 한 목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덧 고령이 된 한 목사가 제의를 정중히 사양하고 대신 김장환 목사를 추천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다.

김 목사는 이후 미국을 방문할 때마다 그레이엄 목사를 찾아가 안부를 묻고 교제의 시간을 가졌다. 마지막 방문은 3년 전. 이미 그레이엄 목사는 그때부터 시력과 청력 등이 안 좋아 김 목사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김 목사는 "내가 '저 여기 왔습니다' 하니까 웃으면서 '서울에 다시 한번 가서 전도 대회를 하자'고 했다"며 마지막 만남을 회상했다.

김 목사는 그레이엄 목사 장례식에서 조사를 읽는 다섯 사람 중 유일한 외국인으로 선정됐다.

그레이엄 목사와 이 땅에서의 이별을 어느 정도 준비했던 걸까. 김 목사는 지난 6년간 외부 강연 또는 설교 요청을 받을 때마다 '만약'이라는 단서를 달곤 했다. 그레이엄 목사가 눈을 감으면 일정을 취소하고 곧바로 미국으로 달려가기 위해서였다. 그만큼 그레이엄 목사와 각별했던 사이였다.

김장환 목사는 본지에 추도사를 전해왔다. 그는 빈자리로 인한 슬픔과 허전함에도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으로 그레이엄 목사를 기억했다. <추도사는 www.koreadaily.com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미국 전역 추모 열기 뜨거워"
국회의사당 유해 안치 이례적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장례식은 총 9일 장으로 치러진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복음 선교사로 불리는 만큼 미국 전역에서 추모 열기는 뜨겁다.

22일 유가족 측은 "고인은 생전에 본인의 장례식에 대한 세부 사항을 계획하고 미리 결정해 뒀다"고 전했다.

김장환 목사가 이번 장례식에서 외국인 목회자 대표로 조사를 읽는 것 역시 준비된 계획이었다. 수년 전부터 빌리그레이엄복음주의협회(BGEA) 재단 측이 그레이엄 목사의 소천을 대비, 김 목사에게 미리 부탁해두면서 이루어졌다.

장례 일정을 살펴보면 우선 그레이엄 목사의 유해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 지역 빌리그레이엄 도서관에 27일(오늘)까지 안치된다. 이후 유해는 워싱턴DC 지역 국회의사당에 안치돼 조문(2월28~3월1일)을 받게 된다. 국회의사당 조문에는 상하원 의원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조문도 허용된다.

통상적으로 대통령, 군인, 의원 등이 아닌 일반인의 유해가 의사당에 안치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일반인이 의사당 조문을 받은 경우는 지금까지 3명이 있었다. 의사당 총기난사 사건 때 사망한 경찰 제이컵 체스트넛과 존 깁슨(1998년), 흑인 미국인 인권운동가 로자 파크스(2005년)다.

이번 의사당 유해 안치는 그레이엄 목사가 그동안 미국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레이엄 목사의 유해는 이후 다시 샬롯의 빌리그레이엄도서관으로 옮겨진다. 장례식은 3월2일 정오에 치러진다. 이번 장례식에는 미국의 전직 대통령을 포함, 23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참석이 예정돼 있다.

장례식은 대형 천막에서 거행된다. 지난 1949년 그레이엄 목사가 LA에서 천막을 치고 열었던 부흥 집회를 추억하기 위한 것이다. 이후 그레이엄 목사는 지난 2007년 눈을 감은 부인 루스 옆에 안장(빌리그레이엄도서관내)될 계획이다.

<김장환 목사의 추도사>

그리운 빌리그레이엄 목사님!

목사님께서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다는 소식을 접한 것은 한국시간으로 지난 21일 늦은 밤이었습니다.

CNN을 비롯한 세계 유수언론들은 앞 다투어 목사님의 소천 소식을 깊은 애도와 안타까움으로 전하고 있었습니다.

온 세계가 깊은 슬픔 속에 빠졌습니다. 저는 너무나 놀랐고,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아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목사님을 마지막으로 뵌 것이 3년 전 목사님 댁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유달리 한국을 좋아하셨던 목사님은 제 손을 꼭 붙잡고, 한국에서 다시 한 번 집회를 하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건강하면 오세요, 준비해두고 있겠습니다." 라고 말씀드렸는데, 그 약속을 뒤로한 채 이렇게 사랑하는 자녀와 손자들, 그리고 목사님을 사랑했던 우리들 곁을 훌쩍 떠나셨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자주 찾아뵐 걸 하는 아쉬움이 밀려옵니다.



사랑하는 목사님!

저는 목사님과의 수많은 만남 가운데 1973년 여의도광장에서 5월 30일부터 6월 3일까지 열렸던 빌리그레이엄 전도 집회를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매일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마지막 날에는 110만 명이 운집을 했습니다.

저는 "Love one another" (서로 사랑하라)라는 내용의 목사님 말씀을 통역하면서 이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것임을 강렬하게 느꼈습니다. 당시 3만8000여 명이 예수를 믿기로 작정했었는데 저는 지금도 종종 그때 현장에 있었고, 예수를 영접했다고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 집회의 감동이 되살아나곤 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 집회를 계기로 한국교회는 부흥의 불길이 일어났고, 대형교회들이 생겨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한국의 영적 부흥을 위해 귀한 메시지를 전해주신 목사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 시대의 위대한 복음전도자이신 목사님!

목사님의 생애 100년은 참으로 아름다우셨습니다. 전 세계에 복음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셨고, 또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예수님, 사도바울처럼 그렇게 평생을 복음의 열정으로 사시며, 수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셨습니다.

심지어 적대국가인 북한에 가셔서 김일성 앞에서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전달하시기도 하셨죠.

그런 목사님을 하나님께서는 크게 높여주셨습니다. 그러나 목사님께서는 모든 존귀와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리셨습니다.

아마도 오늘날까지 믿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든 전 세계인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것은 이렇듯 늘 겸손하셨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러기에 목사님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목사님! 소식은 들으셨겠지요?

이제 2020년에 프랭클린 전도집회를 한국에서 준비 중에 있습니다. 지난 45년 전 목사님께서 한국교회의 부흥을 위한 도구가 되신 것처럼, 그 집회를 통해 한국의 다음 세대가 하나님께 헌신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천국에서 응원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계 2:10)"



이제 이 땅의 모든 수고를 마치시고 하나님 품에 안기신 빌리그레이엄 목사님!

다시는 이 땅에서 목사님을 뵙지 못한다는 슬픔과 허전함이 때때로 엄습하겠지만 그러나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이 우리에게 있음을 잘 압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 일평생을 하나님을 사랑하고, 잃어버린 영혼들을 사랑하며, 복음전도자의 길을 걸으셨던 것처럼 남아있는 우리도 그 길을 걸어가야 함을 잘 압니다.

저도 하나님께서 부르실 그날까지 한 영혼이라도 주님 앞에 인도하기 위해 열심히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 그토록 원했던 남북통일, 복음 통일을 위해 극동방송을 통한 복음전파에도 더욱 매진하겠습니다.

천국에서 다시 만날 때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남겨진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빌리!

이제 사랑하는 주님 품에서 편히 쉬소서! 사랑합니다.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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