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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미투와 와이프 투

황상호 / 기획취재부 기자
황상호 / 기획취재부 기자  

[LA중앙일보] 발행 2018/03/03 미주판 9면 기사입력 2018/03/02 20:56

남성끼리 대화에서 종종 안드로메다로 빠지는 주제가 있다. 성문제다. 그 중 성폭력에 대한 주제는 이성 간의 문제, 위계에 의한 폭력 문제 등 다양한 쟁점이 혼재돼 있어 결론 없이 자신의 생각만 주저리 쏟아놓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성폭력이 호탕함으로 포장되고도 아무도 수습하지 못한 채 말이다.

나 역시 침묵의 가해자다. 여성과 있는 대부분 자리에서 성 차별적인 단어조차 쓰지 않으려고 하지만 여성에게도 일부 성폭력의 책임이 있다는 '짧은 치마론'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박하지 않고 살아 왔다. 짧은 치마론은 마치 태극기 부대를 향해 헌법의 가치를 설명하는 것과 같은 무력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성범죄는 친고죄가 아니다. 미투가 아니라 목격자들이 연대하고 고발해야 할 문제다. 아내가 겪었던 일을 풀어놓으려 한다. 일종의 와이프 투(Wife Too)다.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충청북도의 작은 소도시였다. 나는 5년 차 기자였고 아내는 수습기자였다. 기자사회에서 수습의 수는 '짐승 수(獸)'로 번역되며 이모저모 막 굴려 마땅한 존재로 취급된다.

교제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늦은 밤. 당시 여자 친구였던 아내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왔다. 유부남 기자 선배가 커피를 마시자고 집 근처에 왔다는 것이다. 밤 12시라도 사건이 터지면 출동해야 했던 신세라 근처 커피숍에서 만나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거니 했다고 한다. 하지만 선배 기자는 자꾸 집에 들어가서 커피를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술에 취한 것 같았다고 했다.

또 다른 선배는 취재를 하던 중 갑자기 어지럽다며 시골길에 차를 세웠다고 한다. 그러다 좀 기대자고 하더니 갑자기 키스를 하려고 다가왔다. 아내는 놀라 손으로 막았다. 당시 그는 머리가 아파 그랬다며 사과를 했다.

성적 폭력의 역사는 더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의 모 대학원 조교 시절 담당 교수는 일과 시간이 끝나고도 아내를 개인 모임에 데리고 다녔다. 주로 따라다니며 가방과 안경을 챙겨주고 술자리에서는 가만히 앉아 있는 병풍 역할이었다.

교수는 학문적 성과도 높고 학교에서도 인정받아 높은 자리에 올라 있었다. 그런데 그는 종종 맥락 없이 아내에게 "남자랑 어디까지 가봤냐"고 물었다. 심지어 어느 날은 쫄면을 먹고 있다가 "모텔 갈래"라고 물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하도 어이가 없어 농담이시죠라고 말하고 자리를 파했다고 한다. 또 어떤 날은 그가 그의 제자인 신입 방송사 아나운서와의 술자리에서 아내를 앞에 두고 각종 성행위 자세에 대해 희희덕거리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성적 수치심은 모두 아내의 몫이었다.

그는 결국 성추행 피해 학생이 경찰에 신고를 해 지난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명령 받았다. 아내는 경찰서에 가서 참고인 증언을 했다. 하지만 아내는 빨리 신고를 하지 않아 피해자가 늘었다며 자신을 자책하고 있다.

이상은 평범하게 살아온 30대 초반의 아내가 겪은 성적 폭력 경험담이다. 너무나 평범해 그래서 더 놀랍다. 남자들이여, 객관적인 근거도 없지만 짧은 치마가 성폭력을 유발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입 밖으로 떠들지 말라. 미투 해시태그의 그물이 점점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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