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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 책장]당신도 그들과 똑같나요?

아프리카라고 하면 광활한 세렝게티 평원, 주문처럼 외우는 ‘하쿠나 마타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정치, 사회적 현실은 평온한 자연과 대비된다. 아프리카에 대해 굉장히 많이 아는 듯해도 아프리카를 세 문장 이상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기 나이지리아 출신 예수회 사제인 우웸 아크판 작가가 쓴 아프리카 보고서가 있다. ‘한편이라고 말해’(사진)는 중, 단편 소설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내용은 케냐, 나이지리아, 에티오피아, 르완다 등 아프리카 대륙 몇몇 나라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정면으로 고발하는 르포(reportage)에 가깝다.

케냐 나이로비의 판잣집 속에서 복닥거리며 살아가는 여덟 식구의 이야기를 담은 ‘크리스마스 성찬’은 빈민가 가정의 비참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큰딸은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거리에서 백인 어른들을 상대로 몸을 판다. 고작 열두 살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힘겹게 돈을 벌어도 가족을 배불리 먹이지 못한다. 마약의 환각에 의지해 배고픔을 견디고, 동생들은 동냥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누나의 고통을 지켜보면서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현실이 묘한 여운을 남긴다.

두 번째 단편 ‘가봉에 가기 위해 살찌우기’에는 에이즈에 걸린 나이지리아 가족이 등장한다. 열 살, 다섯 살 남매는 삼촌에게 오토바이가 생긴 것을 보고 드디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희망을 품지만, 그것은 삼촌이 어린 조카들을 팔아넘기기로 하고 받은 대가였다. 삼촌은 가봉에만 가면 좋은 학교,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다고 조카들을 구슬렸다. 아픈 부모에게 약을 주고 집도 새로 지어준다고 속였다. 남매들이 양부모의 말만 잘 들으면 얼마든지 부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순수한 어린 남매는 삼촌의 말을 믿었다. 남매가 호의와 친절의 가면을 쓴 어른들의 실체를 알아가는 과정이 씁쓸하다.



세 번째 소설 ‘이건 무슨 언어지?’는 에티오피아가 배경이다. 늘 함께하던 단짝 소녀들은 이슬람 폭동으로 어른들이 싸우자 강제로 헤어지게 된다. 이후 나름의 대화법을 만들어 가까스로 우정을 이어가는 모습이 어른들의 모습과 대비된다.

‘럭셔리 영구차’는 종교 내전으로 나이지리아 북부를 피해 남쪽으로 피난하는 열여섯 살 무슬림 청년이 주인공이다. 그리스도교도로 가득 찬 럭셔리 버스 안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뒤섞여있다.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하기 위해 소년은 자신의 신분을 위장해야 했다.서로 죽고 죽이는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일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인간을 구원하고 가르침을 줘야 할 종교가 갈등의 핵심으로 변질되는 과정이 흥미롭다.

마지막 소설 ‘부모님의 침실’은 1994년 르완다에서 3개월 동안 약 80만명이 잔혹하게 살해된 후투족과 투치족 사이의 치열한 학살 사건이 배경이다. 어린 소녀 모니크는 부모의 부족이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참혹한 살상의 한복판에 놓이게 된다. 광포한 사람들로부터 딸을 지키기 위해 엄마는 딸에게 “같은 부족이라고 말해”라고 이른다. 이는 “한편이라고 말해”라는 뜻이 된다. 절망의 장면을 소녀의 눈으로 담아내 비극이 더욱 참혹하게 다가온다.

가난, 아동 학대, 종교, 인종 분쟁 같은 첨예한 문제를 풀어낸 소설집은 모두 아이의 시선으로 흘러간다. ‘내 편’이 아닌 타인에 대해 인간이 얼마나 광포해질 수 있을까. 필요 때문에 ‘남의 편’을 처단해야 할 상황이라 할지라도 아이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세상의 모든 어린이가 안전한 세상 속에 살아가도록 하고 싶다는 우웸 아크판 작가의 말이 새삼 아득하게 느껴진다. ‘아이에게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는 어른으로서 해야 할 당연하고 마땅한 일인데, 어쩌다 보니 간절한 염원이 되었다.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전쟁과 빈곤 없는 세상에서 오롯이 제 꿈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더 이상의 비극은 없기를 바라본다.


이소영 / 언론인, VA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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