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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뒷동산

안성남 / 수필가

마음에 구멍이 생기면 메꾸어야 할 무엇이 필요하다. 마음의 치료를 일구어 내는 시간도 있어야 하고 그럴만한 장소도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혼자 있는 자동차 안에서 그 일이 이뤄진다고 한다. 여러가지가 편리해진 세상이지만 오히려 이것을 위한 시간과 장소는 점점 더 찾기 어려워 진다. 집안 일을 맡아 하는 어느 사람은 식구들 모두 내보내고 혼자 남은 거실에서 속 마음을 열어본다고 한다. 부족할 것 없는 풍족한 시절이라 하지만 어쩐지 더 가난해지고 허전한 것이 더 많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산이 많은 한국은 집이 자리하고 있는 곳에서 사방을 바라보면 앞, 뒤, 옆에도 산이고 벌판 건너도 산이 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산들이 똑같이 보이지 않고 모두 별다른 모양으로 다가 온다. 저 앞 산 뒤쪽에 조금 숨어있는 산은 무엇인가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 같고 불쑥 튀어나온 험한 바위가 많은 저 산은 그리 친절해 보이지 않으며 동네 입구에 수호신처럼

솟아있는 산은 사람들에게 전설 하나를 선사해 줄 것도 같다. 마당에 내려 서면 정면으로 보이는 앞산은 언제나 삶의 경구를 던져 주는 듯한 자세로 내려다 보고 있다. 뜻을 세우고 어느 날 그 꼭대기까지 가 보리라 다짐하게 한다. 뒤에 있는 그것은 그저 때때로 거기에 올라 "나 왔네"하며 인사하듯 안기는 분위기에 젖게 만든다.

한국의 집은 거의 뒤에 아늑한 산을 두고 지어진다. 임금이 있던 궁궐도 뒤에 아담한 산을 두르고 있다. 한국 사람들의 마음은 집조차도 등 뒤에서 토닥토닥 어루만져 주는 어떤 손길 같은 것이 있어야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삶이 어려워 질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운을 주는 존재로서 저 멀리에서부터 구비구비 이어져 오는 산맥의 힘을 기대하고 있음이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꿈에서 깨어나니 벌판에 혼자 서 있다. 벌판은 기대어 볼 언덕이 없어 제대로 서 있기가 쉽지 않다. 무엇이든지 나의 버팀이 되어 줄 것을 부지런히 찾아 본다. 그림자 드리우는 푸른 잎, 무성한 나무 한 그루 혹은 차곡차곡 쌓아 올린 별다른 모양의 석탑이나 알 수 없는 글귀가 새겨진 기둥 등 벌판의 삶을 바로 서게 하는 손길이 될 것을 추구한다. 속삭이는 음성, 따뜻하게 바라보는 눈길, 사정을 들어주는 깊은 표정, 어깨를 쓰다듬는 손길 그리고 "이젠 일어나야지"하는 격려의 한 마디를 들으며 힘을 다시 얻는다.

운이 좋아 한국의 전형적인 마을에서 성장했으면 뒷동산의 품에 안기는 좋은 시간들을 겪으며 지내 왔을 것이다. 그곳에 올라서면 시야는 넓어지고 나무와 풀과 흙과 풀벌레와 새들과 맑은 공기로 해서 더 없이 시원해지고 가슴 속이 청소 되는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뒷동산 없이 어른이 되어간 사람들도 그 품이 필요한 시간에 아무도 모르게 찾아가고 공기를 바꾸고 시야를 다시 세우는 자기만의 한 자리를 갖고 있었음을 어느 날 발견한다. 정말로 동그스름한 뒷동산에 오른 적은 없어도.

슬플 때 같이 슬퍼하고 기쁠 때 같이 기뻐해 주며 우리를 품어주는 존재가 있어 사람들은 혼자가 아닐 수 있다. 혼자서 벌판에 서 있기에는 바람이 너무 강하고 혼자서 숲 속에 들면 너무 많은 풀나무가 발길을 막아 서며, 혼자서 고원의 길을 가면 끝 없는 대지가 용기를 죽인다. 혼자서 무엇을 즐거워 하는 것 보다는 같이 즐거워 하면 기쁨이 훨씬 더 커진다. 자꾸 자꾸 우리들 주변에서 사라져 버리는 더불어 지혜를 되찾기 위해 오늘은 잊어버린 뒷동산을 찾아 나서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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