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숨어 있는 것이 아름답다
박계용/수필가
주일 아침, 낯선 동네에서 성당을 찾아가는 한적한 시골길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자연목 그대로 마련된 제대에서 노사제와 교우들이 화답하며 드리는 미사는 기쁨이다. 평화를 구하는 아뉴스 데이(Agnus Dei), 어린 소녀의 청아한 무반주 성가는 내 영혼을 고양시킨다. 미사 참례 후 어디에서 왔는지 묻는 신부님, 천사의 도시에서 왔노라는 답에 오리지널 고향이 어디냐고 재차 물으신다. '아, 저희는 한국인'이라니 코리아를 염려하시며 손을 맞잡고 기도해 주신다. 마치 한 폭의 명화같이 아름다운 산골 마을의 소박하고 친절한 그들처럼 잠시 머물다 떠나는 나그네를 하얀 낮달이 배웅한다.
설렘으로 다시 가보는 비숍의 은사시나무숲은 가뭄 탓일까, 공해에 시달린 듯 기대했던 비경은 보이지 않고 강태공이 세월을 낚고 있다. 아쉬움으로 돌아서는 해 질 무렵, 숙소로 가는 길을 놓치고 이정표는 June Lake로 안내한다. 지나온 그 많은 호수 중 가장 작은 갈매기 호수(Gull Lake)에 멈춘 행운이라니! 은빛 물결 반짝이는 호숫가 벤치, 숨어 있는 작은 숲에 노란 아스펜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오솔길, 쓰러진 고목에 걸터앉아 가만한 바람에 사르르 흔들리는 은사시나뭇잎의 합창을 듣는다. 비록 길을 잃고 잘못 든 길에도 숨어 있는 아름다움은 조락의 계절에 마련하신 선물이다. 묵직하게 자리한 시름 대신 보이지 않는 수호천사는 릴케의 '가을'로 위로한다. 낙하하는 나를 '한없이 조용하게' 두 손으로 받쳐주는 분이 계심을.
눈으로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숨어 있는 것들, 인생의 구비마다 보물들이 숨어있다. 사랑도 정도 공기도 바람도 최고의 선물은 실체가 보이지 않는다. 아슬아슬한 벼랑길을 안전하게 몇 날을 동행해 준 벗의 사려 깊은 배려도 아름답다. 산 그림자가 내려오고 양떼도 보금자리를 찾아간 어두운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잔잔한 행복으로 마음 또한 고요하다.
겨울로 가는 길목을 따스하게 감싸주는 숨어 있는 아름다움은 이 가을의 아침 햇살과도 같다. 감나무 잎사귀가 붉게 물들고 풀벌레가 노래하는 가을 향기는 멀리 가지 않아도 지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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