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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 스토리] '어금니 아빠'의 아내와 레티시아

문소영 /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어린 시절 불행했던 사람이 자라서 보상받긴커녕 계속 비참하게 살다 가다니 세상이 왜 이 따위냐"고 얼마 전 지인이 씁쓸하게 말했다. 중학생 살해범 '어금니 아빠' 이영학의 또 한 명의 피해자로 추정되는 그의 아내 최모씨 이야기였다. 남편의 가학적 성행위와 성매매 강요에 시달리던 삶을 투신으로 마감했다. 유서에는 어린 시절부터 가족 등에게 성 학대를 당했다고 써 있었다 한다. 그도 한때 '내일은 오늘보단 나을 거야' 하고 꿈꾸지 않았을까. 그 꿈은 얼마나 무참히 배신당했는가. 더욱 비극적인 현실은 이런 사람이 최씨뿐이 아니라는 것이다. 폭력가정에서 학대 속에 자란 여성이 다시금 폭력적 파트너에게 학대당하며 사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어떤 이들은 '그럼 더 조심해야지 왜 그런 상대를 만나느냐. 왜 탈출하지 못하느냐'고 묻는다. 최근 번역본이 나온 역사학자 이반 자블론카의 책 '레티시아: 인간의 종말'이 그 답을 줄 것이다. 논픽션인데도 메디치상 등 여러 문학상을 받은 이 책은 2011년 프랑스를 떠들썩하게 한 18세 소녀 레티시아의 살해 사건과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소녀의 삶을 섬세하게 재구성한다. 그를 "죽음의 구경거리가 아닌 존엄한 한 인간"으로 복원하기 위해서다. 레티시아는 엄마를 상습 구타하고 강간해 정신병원에 가게 한 친부, 쌍둥이 언니를 성추행한 위탁가정 양부 밑에서 자랐다. 그래도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며 자기 삶을 개척하려 애썼다. 하지만 오래도록 일상적 폭력에 시달려 길들여지고 정신이 쇠약해지고 폭력의 위험을 감지해 바로 피하고 저항하는 능력이 둔해진 상태였다. 그는 또 다른 폭력가정 출신 남자와 잠시 어울렸다가 죽임을 당했다.

그래도 레티시아는 살인범의 요구에 "안 돼"라고 말하며 자신의 존엄성을 찾다가 죽었다고 자블론카는 말한다. 최씨가 남편의 의부를 성폭행으로 고소한 것도 마지막 존엄성을 찾기 위한 노력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의 죽음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선정적 이야깃거리로 소비할 것인가. '가엾어라, 나는 저런 환경에서 안 태어나 다행이야'라고 생각하고 자기 위안의 도구로 소비할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최씨와 레티시아를 구하기 위해 이런 폭력의 고리를, 가정폭력의 대물림과 사회 전파를, 어떻게 끊을지 생각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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