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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가을이구나!

장해경 / 자유기고가·뉴저지 거주

그동안 미뤄 왔던 이불 빨래며, 집안 구석구석 청소를 하며 분주한 주말을 보냈다. 다시금 시작된 월요일 아침, 조금 여유롭게 한 잔의 커피를 마신다. 햇살이 비추기 시작한 창 밖은 어느 샌가 새벽 비 맞아 촉촉히 젖은 아카시아의 작은 노란 잎들이 무수히 떨어져 있다. 눈치 채지 못하게 태양의 고도는 낮아지고, 벌써부터 색깔이 변해버린 잎들은 이미 시작된 가을을 감지케 해준다.

지난 주 금요일, 내가 일하는 '시니어 데이케어 메디컬 센터'에 K시인이 다녀갔다. K시인은 뉴저지에 살면서 여러 방면에서 활발히 문학 활동을 하는 분이다. 시인은 외롭고, 고독하며, 접근하기 힘들 거라는 통념적인 이미지를 깨고,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도 아니고, 학교도 아닌, 이곳 시니어 센터에 선뜻 방문해 준 일이 놀라웠다. 노인들과 더불어 오랜 친구처럼 함께 하는 시인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시인은 가을의 문턱에서 추석을 기다리며 가을의 시를 준비해 왔다고 했다. 그리고 준비해 온 7편의 시를 낭독했는데, 모르는 시가 더 많았다. 시인들의 이름과 제목을 잊지 않으려고 간단한 메모를 했지만, 그래도 놓친 시들도 있다. 나는 모르는 시인들의 시지만, 시니어 센터에 계신 어르신들은 잘 알 수도 있을 것이다.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로 시작한 낭독은 김영광 시인의 '오메! 단풍 들겄네'라는 시에 와서 그 구수한 사투리가 동요 같이 재미나서 듣는 분들의 표정에 활짝 웃음꽃이 피었다.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는 우리 모두가 국어 시간에 배운 국민 시다. 시간의 흔적으로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끔 하는 멜랑콜리가 촉촉하게 눈가를 녹여줬다. 누구의 시인지 기억나지 않는데, 시 낭독 중에 들려온 '바스락'이란 단어 하나는 멋진 시어가 되어서 가슴에 휘휭~ 한 점 바람을 그리는 기막힌 요술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이어진 김용택 시인, 안도현 시인 등등.



시를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은 흑백 동영상으로 시인의 발자취를 따라 갔다. 북간도에 계시는 엄마를 그리는 시인의 마음은 마른 나뭇잎이 되어 바람을 타고, 오늘 내게 아프게 아프게 바스락 바스락 댔다. 문득 한국에 계시는 엄마와 가족들이 보고 싶어졌다. 그런 그리움은 시니어 센터에 올 때마다 여기 나오시는 어르신들을 국적을 불문하고 몸이 좀 불편한 내 언니같이, 내 엄마같이 생각하게 해준다. 그래서 오늘 문안 인사하러 온 것처럼 하루를 즐겁게 보내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시를 읽는 동안, 어르신들은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오늘 안으로 숙제를 끝내야만 하는 것 마냥 숨은 그림 찾기 프린트를 하기도 했다. 어떤 분은 귀가 어두워서 잘 듣지 못하니까 무슨 말을 하냐고, 아직 낭독이 끝나지도 않은 K시인의 목소리보다 더 큰 목소리로 몇 번이고 묻는 바람에 주변에서 쉬-잇! 눈총을 받기도 했다.

시 낭독을 듣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집중하지 못하는 어린이들처럼 각양각색이었지만, 대부분은 여느 때와 달리 사뭇 진지하셨다. 찬란했던 기억들을 오버랩하시는 걸까? 어르신들이 설사 시를 쓰지는 않더라도 밤하늘에 대고 "나 그동안 참 잘 살아 왔어"하고 용기 내어 크게 한번 외쳐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한 시간 정도의 시 낭독이 끝날 무렵, 내 마음의 시간은 뜨거운 여름을 뒤로 보내고 있었다. K시인은 전에는 몰랐을 또 다른 가을에 오늘 하루 '별 헤는 밤'의 시인이 되어 보라고 이미 시작된 가을을 말해 주고 갔다. 나의 가을은 이렇게 성큼 내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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