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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안개 낀 히말라야

히말라야의 품에 안기다(16)

4월 29일 새벽 1시30분. 계속 설사를 한다. 허벅지가 아픈 만큼이나 잠을 설치며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것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설사의 주범이 고산증인지 식수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정상에 가까워 오니 식수가 큰 문제였다. 지금까지는 1리터짜리 물병을 1달러 주면 하나 살 수 있었는데 이제부터는 롯지에 있는 자연수를 사서 마시거나 저녁에 자기 전에 침낭 보온용으로 쓰는 뜨거운 물을 아침이면 식수로 먹어야 한다. 물 색깔이 노리끼리하고 물맛도 영 탐탁치가 않다. 정로환을 꺼내 먹고는 엎치락 뒤치락 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깨고 보니 다행히 몸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오늘 가는 데우랄리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로 가는 마지막 롯지가 있는 마을이다. 물론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가 지척에 있기는 하지만 그 곳에 머무느니 1시간여 거리 밖에 안 되는 ABC로 바로 가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미리 롯지를 예약하지 않고 오는 산악인들은 이리 저리 다니며 방을 찾아야 한다. 단체가 아닌 이상 일정을 잡기가 힘들다 보니 방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자리를 펴고 다음 계획을 잡아 떠나야 하는 것이다. 희귀성은 곧 값을 올리는 주범이 되기도 한다. 이미 촘롱을 지날 때부터 징조는 시작되었다. 그나마 조금 큰 도시이고 보니 세속의 물을 타는지 가끔 어린 아이들이 '초콜릿, 초콜릿' 하며 손을 내미는 모습이 눈에 띄었고 시누와 롯지에서는 라면 하나에 자그만치 4달러의 거금을 받고 팔고 있다. ST가 어제 라면을 3달러에 사왔는데 조금 모자라서 CS가 사러 갔더니 4달러를 받더란다. 10분전에 3달러에 샀다고 불평하니까 잘못 팔았다나. 부르는 게 값이라더니 바가지 상술이 여기까지 올라왔다. 오늘 아침 메뉴는 계란후라이와 북어국이다. 노릇 노릇한 계란이 건강하게 뛰놀던 닭들이 연상되면서 무척이나 신선해 보인다. 먹으면 힘이 절로 날것 같아 두 개를 먹고는 배낭에 비닐포대와 고어텍스 자켓을 챙겼다. 한 두 번은 꼭 내리는 비가 우리를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대나무 숲이 많아서 지어진 이름 밤부를 지나 도반, 그리고 히말라야 롯지를 지나면 3220미터의 데우랄리가 나온다. 많이 걸어야 하는 하루다. 원래 산이라는 곳이 오를 때는 괴롭고 힘이 든다. 하지만 그 과정을 거쳐야만 정상에서의 기쁨을 느낄 수 있으니 모든 일에 고통이 따르지 않으면 만족도 그 만큼 줄어드는 법이다.

밤부를 향해 가는 길은 그 동안 걸었던 길과는 조금 다르다. 계단 보다는 산행로가 더 많았고 길도 점점 좁아지고 있다. 햇빛은 없었지만 덥지 않고 산행하기 좋았던 날씨에 갑자기 툭툭 빗방울이 떨어진다. 모두들 탄식과 함께 부랴 부랴 비닐포대를 꺼내 머리에 뒤집어 쓰고 양 팔을 포대에서 빼낸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동작도 빨라졌고 참을 만 하다. 조금 가다 보니 내리던 비는 오락 가락하고 안개가 자욱이 껴서 앞이 잘 보이질 않는다. 오르는 계단도 경사가 심해 땀으로 범벅이 되다 보니 일행 중 반 이상이 포대를 벗어 던지고는 비를 맞는 선택을 한다. 포대를 벗고 입고 하는데 쓸 힘으로 한 발자국 더 걸어야 하는 나를 포함한 몇몇은 묵묵히 앞만 보며 무거운 다리를 옮긴다. 자욱한 안개 속에 내딛는 길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계단은 거의 보이지 않고 한국의 산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정겨운 산 행로다. 대나무가 양 옆으로 쭉쭉 솟아 올라 운치를 더해 주고 길가 쪽으로 휘어진 가지는 산행로를 향해 축 쳐져 있어 안개 낀 길목마다 우리를 환영하듯 감싸고 있다. 대나무가 워낙 많다 보니 지붕을 대나무로 만든 집들이 종종 눈에 띈다. 밤부에서는 잠시 쉬고 바로 도반을 향해 움직인다. 앞으로 1시간 반 정도를 더 가야 하기 때문이다. 통나무로 만든 다리도 있고 계곡에 물도 졸졸 흐르고 안개 낀 깊은 산속은 어디서도 보기 힘든 장엄하고 우아한 모습이다. 내일이면 도착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머릿속에 그릴 즈음 또다시 비가 쏟아진다. 후다닥 우비를 걸쳐 입고 도반에 도착하니 날씨에 꼭 맞는 점심으로 수제비가 기다리고 있다.




정동협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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