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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산책] 지구가 아프다

지구가 몸이 시원치 않은가 보다. 말 한마디 없이 횡포를 받아 넘겨주더니 말을 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병이 깊었나 보다. 아프다고, 여기저기 쑤신다고 이제는 소리까지 지른다.

얼마 전 일이었다. 마트 계산대에서 종업원이 물었다. "종이 봉투에 넣어 드릴까요 비닐 봉투에 넣어 드릴까요?"

망설임 없이 종이 백에 넣어 달라고 했다. 장을 본 물건들이 많았는지 차에 도착하기도 전 종이 봉투가 찢어졌다. 담겨있던 복숭아가 주차장에 우르르 쏟아져 자동차 밑으로 흩어졌다. 지나가던 사람이 차에서 내리더니 친절하게도 비닐봉지를 한 개를 내게 건넸다. 괜찮다고 했다. 한 개의 비닐봉투라도 소비를 줄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차 밑으로 흩어진 복숭아를 주섬주섬 주워 자동차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차 문을 여니 깜빡 잊고 간 헝겊 가방이 시트 위에 덩그마니 놓여 있었다.

마트 종업원이 종이봉투에 넣어 줄까 비닐 봉투에 넣어 줄까 묻는 것은 내게 익숙한 일이 아니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종이봉투를 달라고 한 것도 평상시의 대답은 아니다. 예전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대화였다.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나오면 손잡이가 달린 비닐 봉투에 담아주는 것이 당연한 수순 이었고 종이봉지와 비닐봉지 사이에서 고민하는 일 따윈 없었다.



얼마 전 캐나다 해안에서는 집게에 펩시콜라 로고가 새겨진 바닷가재가 발견 되었다고 한다. 인간들이 무분별하게 버린 해양 폐기물을 바닷가재가 먹은 것이다.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깨닫게 해주는 증거다. 그런데도 우리는 별 의식 없이 산다. 해마다 500만t에서 1300만t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바다에 폐기되고 있다고 한다. 플라스틱 폐기물을 바닷새와 물고기들이 먹는다고 한다. 우리는 또 그 물고기들을 먹고 산다. 2050년이 되면 바다에는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이 떠다닐 것이라고 한다. 무섭다. 두려워 죽겠다. 푸른 파도가 넘실거리고 은빛 모래밭이 펼쳐진 바다에 물고기는 떠나고 폐기물만 둥둥 떠다닐 것이라니 슬프다. 도대체 얼마나 더 지구를 아프게 하려고 하는가? 인간의 무절제한 편리함이 지구에 병을 불렀다.

지구는 각종 피부병과 암에 걸려 있다. 남극의 얼음은 하루가 다르게 무너져 내리고 기온은 상승하고 있다. 인간만 견디면 그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먹고 입어야 하는 생태계가 무너진다는 것은 인류의 멸종과도 직결된다. 기후변화로 인한 북극곰의 아사 직전 사진들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 지구가 정상적인 상태를 벗어나면 인간의 거주환경도 급격하게 악화할 것이다. 고국의 동해안에서도 바다의 수온 상승으로 명태가 잘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더워진 동해에 명태 대신 멸치 등이 늘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바닷속 어장지도가 변해 버린 것이다. 어린 물고기가 물 온도 변화와 주변 먹이생물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죽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구가 병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다. 중병에 걸렸는데도 왜 우리는 실감하지 못하는 것일까?

지구는 우주에서 가장 아름답고 무수한 생명이 빛나게 존재하는 유일한 별이었다. 총을 들고 싸워야 범죄인가? 폭탄을 터트리고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만이 테러인가? 무심코 쓰는 비닐봉투 하나가, 매일 마시는 물 페트병 하나가 지구를 죽인다. 인간은 떠나도 수백 년이 지나도록 썩지도 않고 지구를 떠돌 플라스틱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말기 암에 걸려버린 지구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까? 능동적 대처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고 쉽다. 빨대 대신 입대고 마시기,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 사용하기,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 쓰기, 플라스틱 용기 대신 재활용 가능한 유리나 종이 용기 사용하기, 아, 얼마나 작은 것들인가? 얼마나 가까이 있는 것들인가?


김은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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