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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그레이 칼럼] 평안을 찾은 여자

이웃 도시에 토네이도가 지나갔다며 놀란 남편이 아이패드를 들고와서 피해지역의 사진을 보여줬다. 우리가 잘 아는 거리가 끔찍하게 파손된 어수선한 정경에 아찔했다. 창 밖을 보니 무섭게 내리던 비가 멈췄다. 순식간에 환경을 바꾼 자연재해 덕분에 평안한 순간이 더욱 소중해진다. 전날 앨라배마 동부 한 시골에서 재회한 지인이 생각난다. 오래전 그녀에 대한 글을 쓴 것이 있다.

“질경이같은 여자를 안다. 밟히면 쓰러지는 풀이 아니라 강력한 생명력으로 버티는 질경이처럼 억척스런 여자다. 그러나 작은 언어에도 가슴이 상하던 여린 마음의 소유자다. 멕스웰 공군기지에 발령 받아와서 일하던 첫 해에 내 부대에 나와 같은 나이의 한 한인 여성이 군무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짧은 휴게시간을 한국말 하며 즐겼다.

우리 두 사람과 컴퓨터 전문가 그리고 수학강사, 주류사회에서 일하던 네 명의 한국계 여성들이 한달에 한번 만나 한국말 실컷하며 각자의 다른 세계를 하나로 뭉쳐 보려고 애쓴 적이 있었다. 모두 외로웠고 모국인이 그리웠던 시절이었다. 일하는 분야들이 다르듯 성격이나 취향이 많이 달라서 이 만남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 질경이 같은 여자와는 같은 소속 부대에서 일을 하니 우리의 만남은 직장에서 계속됐다. 남편과 두 딸을 키우느라 퇴근 후와 주말에 바빴던 나와 달리 그녀는 석사 코스 밟느라 바빴다. 그리고 내가 다른 소속으로 근무지를 옮기면서 자연히 우리의 만남도 뜸해졌다.

내가 공군에서 정년퇴직하기 직전에 그녀를 만났다. 점심을 함께 하면서 이제 군복을 벗는다는 홀가분한 내 기분과 달리 그녀는 우울한 직장생활에 침체되어 가고 있었다. 한곳에 오래 일했지만 안타깝게도 교육 받은 만큼 승진이 되지 않았다. 공정한 권리와 정의를 갈구했지만 그녀는 냉혹한 현실에 조금씩 고슴도치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후 우리는 가끔 만나서 서로의 근황을 나누었다. 가족에 둘러싸인 나와 달리 독신인 그녀는 외로움에 떨었다. 그리고 알에서 깨어 나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그녀의 직장생활은 고인 물이었고, 그녀도 사람들에 부딪쳐서 늘 좌절을 겪곤 했다.



힘들게 여러 풍파를 거치면서 항상 자신을 일깨워 나가던 그녀가 나이 50대에 용감한 변화를 시도했다. 로스쿨에 진학한 것이다. 불의가 득실득실하고 살기 힘든 세상에 대한 그녀의 항변이랄까. 한번 세상살이와 싸워 보고 싶은 충동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녀는 꿋꿋하게 버티며 공부를 했다. 오랜 세월 그녀가 고수하던 아집을 버리고 하느님을 찾아 믿음 생활하며 어려운 공부를 마칠 수 있었던 힘도 얻었다. 그리고 기도를 하면서 그녀의 표정이 밝아졌다. 가끔 만나면 그녀가 고슴도치에서 미운 오리 새끼로 변함이 신기했다.

어느날 그녀로부터 갑작스런 전화를 받았다. 변호사 시험의 합격 통보를 받았다는 밝은 소식을 알려줬다. 마침내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로 화려하게 변신한 것이다. 한 끈질긴 한인 여성의 인간승리여서 굉장히 반가웠다. 그날 저녁, 그녀가 잠시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한식당에 마주 앉아서 우리는 지나간 세월보다 앞으로의 세월에 더 관심이 많았다. 이제 그녀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그녀는 남을 돕는 일에 인생의 마지막 반세기를 활발하게 뛸 것이다. 질경이 같은 그녀는 주위 사람들에게 인생의 경이로움을 보여주며 몽고메리 한인 사회의 신선한 충동이 됐다.”

그때로부터 10년이 지났다. 어쩌다 간혹 지나가는 바람으로 그녀의 근황을 들었지만 오랫동안 교류가 없었다. 작년 어느날 불쑥 생각나서 전화했더니 그녀가 “몽고메리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옮겼다가 다시 앨라배마 작은 마을에 정착했다”고 했다.

이번에 그녀를 찾아갈 기회가 있었다. 조지아주 접경 가까이에서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구불구불 한적한 시골길을 30분 더 지나가 인구 3천명인 작은 마을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동떨어진 벽지에서 세상아 나몰라라 하고 방황을 멈췄다. 법원 가까이 변호사 사무실을 열고 개와 서로 의지하며 사는 그녀는 심장마비로 수술을 받은 후라 많이 수척했다. 하지만 그녀가 마음의 안정을 찾은 것이 보기 좋았다. 세상살이 온갖 시련에도 여전히 질경이처럼 강한 그녀는 삶에서 평안한 순간이 소중함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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